인공지능(AI)의 역사에는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갯빛이 함께한다. AI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 ‘동성애자’였기 때문이다. 영국인 과학자 앨런 튜링의 이야기다.
튜링은 1950년 논문을 발표하면서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던진 과학자였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천재적 능력으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해 세계 평화에 기여한 인물이다. 그러나 조국은, 전쟁 영웅의 성 정체성을 문제 삼아 화학적 거세라는 징벌로 그를 모욕했다. AI가 전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지금은 앨런 튜링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 더없이 좋은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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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 강유나



어린 천재의 첫사랑은 남학생

상실감이 컴퓨터 과학의 문을 열다
앨런 튜링은 영국 런던의 마이다 베일에서 1912년 태어났다. 귀족인 남작 가문 릴게임몰 에서,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천재의 조짐을 보였다. 15세에 미적분을 척척 풀어낼 정도였다. 천재 소년에게 잊지 못할 우정이 찾아왔다. 같은 학교 남학생 크리스토퍼 모르콤이었다. 둘은 과학과 수학을 공통분모로 가까워졌다. 방과 후에는 서로의 집에 방문해 여가도 함께 보냈다.
지적 교류의 찌릿함이 감정의 전기를 일으켰다. 튜링은 그에게서 바다이야기릴게임2 모호한 감정을 느꼈다. 우정을 넘어선 애정이었다. 신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모르콤을 그에게서 앗아갔다. 세균성 질병으로 요절한 것이었다.
시련은 삶의 동력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모르콤을 잃은 후 그는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에서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다. 1937년 1월에는 ‘튜링의 증명’을 발표하는데, 현대 컴퓨터의 중심 개념이 담긴 황금성게임다운로드 논문이었다. 그를 컴퓨터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르콤이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7년 후 그는 새로운 학문의 세계를 열어갔다.
전쟁이 낳은 암호 해독의 천재
튜링 덕분에 전쟁 2년 일찍 끝나
시대는 영웅을 크게 쓰는 법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영국 정부는 1938년 9월부 사아다쿨 터 암호해독기관 GC&CS에 앨런 튜링을 채용했다. 나치 독일의 암호를 해독하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이듬해 가을은 유난히 썰렁했다.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해서였다. 군인은 전장에서, 노동자는 공장에서, 과학자들은 연구실에서 나치와 씨름해야 했는데, 튜링의 자리는 연구실의 복판이었다.
과학자들은 최첨단 과학을 활용해 적의 공격 계획을 미리 알아야만 했다. 나치 독일은 에니그마라는 암호 기계를 통해 지휘 명령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데, 에니그마 해독에 수십만 병사의 목숨이 달렸다.
앨런 튜링의 존재감은 컸다. 독일 해군 암호 해독에 애를 먹던 때, 반부리스무스(banburismus)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 돌파구를 찾은 것이었다. 튜링이 이끄는 사단의 암호 해독으로 세계 2차대전은 2년가량 단축된 것으로 분석된다. 튜링 덕분에 1400만명이 넘는 생명이 전쟁터에서 불필요하게 스러지지 않게 된 셈이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의 묘사처럼 그가 모든 걸 혼자 개발한 것은 아니었다. 에니그마 해독의 필수적인 기계 ‘봄베’는 폴란드 암호국이 보유한 기존 제품 ‘봄바’를 기반으로 만들어져서였다. 이미 위대한 과학자들이 일궈낸 성과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해 ‘진보’를 끌어낸 것이었다. 튜링을 조력했던 수많은 인재들도 함께였다. 흔히 외골수로 그려지지만, 튜링은 사람들과 농담을 즐기는 사교적인 인물이었다. 64㎞를 달릴 정도로 스포츠광이기도 했다.
전쟁의 얼굴은 두 가지, 파괴와 창조의 얼굴을 동시에 지녔다. 튜링은 전쟁의 지식을 토대로 최초의 컴퓨터 엔진인 ‘ACE’를 설계했다. 다만 그는 이 지식을 대중에 공개할 수 없었는데, 국가 안보와 관련된 정보를 보호하는 ‘공식비밀법(OSA)’ 때문이었다. 환멸을 느낀 그가 국립물리연구소(NPL)를 떠난 배경이었다.
1948년에 새로 둥지를 튼 맨체스터빅토리아대 수학과에서도 또 다른 혁신을 불러왔다. 논문 ‘컴퓨팅 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을 발표하면서였다. 인공지능형 기계의 표준을 정하는 ‘튜링 테스트’를 공개한 것이었다. 현시대가 열광하는 챗GPT 역시 앨런 튜링이 지평을 열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앨런 튜링의 삶을 그린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한 장면.



성적 취향을 단죄했던 그 시절

화학적 거세 후 독사과 깨문 튜링
튜링을 담기에는 시대의 그릇은 너무나 작았다. 그의 성적 지향은 사회의 보수성과 불화했다. 튜링은 자유로이 욕망하는 존재여서, 사회가 규정한 성별의 장벽을 수시로 넘나들었다. 1951년 크리스마스 즈음이었다. 영국 맨체스터 옥스퍼드 로드에서 시간을 보내던 튜링은 19살의 청년 아놀드 머레이를 만났다. 둘은 어느 순간부터 입을 맞췄다.
한 달 후, 튜링의 집에 강도가 들었다. 머레이의 친구 소행이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튜링과 머레이의 관계가 드러났다. 사법당국은 두 사람을 형법에 따라 기소했다. 당시 동성연애는 중대한 불법이었다.
집행유예를 받았지만, 조건이 있었다. 화학적 거세를 받아들이라는 것이었다. 그에게 학문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어서, 생식기의 기능을 기꺼이 포기했다. 부작용은 상상을 넘었다. 여성처럼 가슴이 나오는 신체적 변화가 따랐기 때문이었다. 굴욕감은 매일 그를 엄습했다. 조롱은 불 보듯 뻔했다. 당대의 유명한 석학인 그에게 향한 눈초리는 따갑고 쓰라렸다.
화학적 거세 조치를 받고 2년이 갓 지난 1954년 6월. 그가 집안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옆에는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독극물인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다. 앨런 튜링은 자신이 가장 좋아한 동화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꼽았다.
냉철하게 세상을 인식해온 과학자의 마지막은 동화와 같은 것이었다. 앨런 튜링은 1400만명의 삶을 구한 위대한 과학자였지만, 영국 사회는 그를 ‘동성애자’로 몰아세웠다. 앨런 튜링이라는 촛불이 더 길게 이어졌다면, 세계는 또 한 단계 변혁의 순간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튜링은 죽어서도 깊게 남았다. 2009년 8월 영국의 프로그래머 존 그라함 커밍이 공식적으로 영국 정부에 요청했다. “튜링을 동성애자로 기소한 것을 사과하라.” 3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의 서명이 이어졌다.당시 총리 존 브라운은 한 달 만에 “그에게 행했던 처우가 끔찍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5년 뒤, 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그의 사면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가 사망한 지 정확히 60년이 되던 해였다.
영국 정부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동성애로 처벌받은 모든 남성에 대해 소급 면책을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앨런 튜링 법’이었다. 너무 늦은 사과는 없다는 걸, 영국은 다시 한번 보여줬다.




[강영운 매일경제신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8호 (2025.12.10~12.1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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