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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도전해 세상의 편견을 지우고 변화를 이끈 대중문화 단짝들 인터뷰.
코미디언 박나래(왼쪽)와 이경하 작가는 2016년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합류한 '입주 동기'다. 올해 10년째 프로그램을 함께 이끌고 있는 두 사람을 '환상의 콤비' 인터뷰를 위해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났다. 강예진 기자
꼭 잠겨진 하늘색 철제 녹슨 대문 앞. 코미디언 박나래는 문을 열자마자 한 발짝도 못 떼고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 내 울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래 왔어. 아 어떡해". 친손녀의 눈 신용경색 물 젖은 인사에 돌아온 건 적막뿐. 마당 앞 평상 주위엔 잡초가 박나래의 키만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가 고향에 내려가면 할머니가 손으로 묵은 김치 북북 찢어 김 폴폴 나는 고봉밥에 올려주던 자리였다.
"언젠 같이 고생 안 했냐" 전현무, 기안84의 진심
박나래는 최근 전남 전세보증금반환청구 무안에 있는 조부모의 빈 집을 찾았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박나래는 2023년 할아버지를, 올 6월엔 할머니를 차례로 여의었다. 그는 어려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컸다. 식구는 많은데 방은 부족한 집에서 두 살 때부터 여덟 살까지 조부모와 같은 방을 썼다. 그렇게 살을 비비며 부모처럼 키워준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나자 박나래는 무너 농협1000만원대출 졌다. "할머니 돌아가셨을 땐 너무 충격을 받아 휴대폰도 못 가지고 내려갔어요. 운전을 도저히 못 하겠어서 대리 불러서 갔고요."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난 박나래의 말이다.
박나래가 이렇게 애끊는 슬픔을 딛고 조부모 집에 유품을 정리하러 발을 들였을 때 그의 옆엔 방송인 전현무와 기안84가 있었다. 둘이 박나래의 고 아파트 매매시 필요서류 행길 동행을 자원했다. 전현무, 기안84와 박나래 조부모와의 인연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현무와 기안84는 2017년 여름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이하 '나혼산') 속 '여름 나래 학교' 특집을 통해 박나래 조부모의 집에서 1박 2일 동안 먹고 잤다. 그렇게 내리사랑을 길고 짧게 받은 세 사람이 무성한 잡초를 뽑고 못 쓰는 물건을 군미필무직자 분류해 버린 쓰레기 분량만 4톤. "할머니 돌아가시고 (집) 정리를 해야 하는 데 도저히 못 하겠는 거예요. 제 손으로 직접 하고 싶어 미장이랑 도배도 배웠거든요. 유품을 마주할 마음이 준비가 안 된 거죠. 그렇게 몇 달을 제가 회피하니까 '도와줄게,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전현무, 기안84 오빠에 '진짜 가 줄 거야, 고생일 텐데?'라고 되물었더니 '언젠 같이 고생 안 했냐?'면서요."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의 유품 정리 모습을 보고 유튜브에 남긴 시청자 댓글.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의 유품 정리 모습을 보고 유튜브에 남긴 시청자 댓글.
박나래가 돌아가신 조부모 집을 찾아가 유품을 정리하다 슬픔에 잠겨 울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떠난 자리 정리하는 법을 언제 배우겠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달 26일 방송된 박나래의 '다녀왔습니다' 편은 유튜브에 공개된 예고 영상만 159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평균 10만 건 남짓이던 다른 방송 회차보다 10배는 많은 수치로, 지난 1년간 유튜브에 올려진 '나혼산' 예고 영상 중 조회수가 가장 높았다. 이번 에피소드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엔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너무 나서 슬펐어요. 2년 다 돼가는 시간 동안 엄마 물건 하나도 못 버리고, 엄마 향기 남은 옷 두 벌에 손수건 한 장은 빨지도 못하고 방에 걸어두고 한 번씩 맡아요. 점점 약해지는 엄마 향이 무서워요'(@Always_Happy_****), ''우리가 살면서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법,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충분히 슬퍼하고 이별하세요'(@HCblu***) 등의 댓글이 달렸다. 내가 직접 겪은 일에 남의 표정과 말로 전해 듣는 간접 경험이 섞여 발효되면서 사람들은 좀 더 깊이 있게 인생을 맛보기 마련이다. "관음증을 부추긴다"라며 때론 손가락질받는 관찰 예능이 생과 사가 교차하는 순간을 묵묵히 따라갈 때 보여줄 수 있는 미덕이다. '나혼산'이 '더불어 산다'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코미디언 박나래와 그가 출연하는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이경하 작가. 이 작가 제공
험난한 관찰 예능 10년 동지와 '무지개 정신'
유품 정리를 한 박나래는 '나혼산'을 통해 그렇게 또 한 번 '어른'이 됐다. 그는 2016년 9월 이 프로그램에 합류해 올 9월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여성 코미디언이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 10년 동안 고정 출연하기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영자와 송은이, 김숙도 한 프로그램에 7, 8년 이상 뿌리내린 적 없다. 강호동, 신동엽, 유재석 등 한 예능프로그램에 10년 넘게 터를 잡은 남성 코미디언들은 여럿이지만, 여성 코미디언들은 상대적으로 쉬 교체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은밀한 파티 기획자 '조지나'부터 석회와 염료를 개 친구의 작업실 벽을 단장해 준 '박미장'까지. 박나래는 쉴 틈 없이 변화하며 '나혼산'에서 10년을 생존했다. 수많은 도전 앞에 그를 이끌어준 여성이 있다. 이경하, 2016년 11월부터 '나혼산'을 꾸려온 작가다. 2016년 '나혼산' 입주 동기인 두 사람은 '관찰 예능 동지'로 험난한 길을 10년 동안 헤쳐왔다. 폐지 위기도 있었지만, 줄기차게 시도했고 뜻을 이뤘다. 괜히 '환상의 콤비'가 아니었다.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똑같이 다양성의 가치 즉 '무지개 정신'을 오랜 생존의 비결로 꼽았다.
"8년 전엔 그렇게 힘들다더니" 그렇게 된 '어른'
-'다녀왔습니다' 보니 울컥하더라고요. 할머니가 나래 씨한테 보내려고 만들어 미처 서울로 못 부친 김치, 냉장고에 그대로 있고. 유품 정리가 쉽지 않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박나래: '나혼산' 식구들한테 정말 고마워요.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다 빈소에 와주셨거든요. 서울에서 무안까지 오기 진짜 쉽지 않은데요.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는 제가 정말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장례 일정을 '나혼산' 식구들한테 아예 알리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나혼산' 식구들을 빈소에서 보니 울컥한 거예요. 그랬다가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다시 갔는데 막상 두 분이 없으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돌아가시기 전에 두 분이 계속 '나혼산' 식구들 안부를 물었거든요. '전 회장님(전현무)은?' '기안이는?' 하시면서요. 이번에 방송 나가기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 빈 집에 관한 얘기를 '나혼산' 식구들이랑 오랫동안 했어요. 다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아니까요. '집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은데 내가 못 할 거 같다'고 했죠. 마음의 준비가 안 됐었거든요. 그러면 또 '나혼산' 식구들이 '우리가 도와줄 게 같이 가자'고 하고요. 방송 아이템 차원으로 한 말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날 (전)현무, 기안84 오빠가 단톡에서 '같이 가자'고 먼저 말해주더라고요.
전현무(왼쪽)와 박나래(가운데), 기안84는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친남매처럼 지낸다. MBC 제공
이 작가: 현무 오빠랑 기안84는 나래 할머니가 손으로 직접 찢어준 김치도 먹어봤잖아요. 나래를 친동생처럼 여기기도 하고요. 나래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틈틈이 저한테 묻더라고요. '나래 괜찮대?' '뭐 도와줄 거 없어?'라고요. 옆에서 보다 '주민등록등본에 양 오빠 1, 2로 같이 올려야 되는 거 아닌가'란 생각까지 했다니까요(웃음).
박나래의 할머니(왼쪽)가 손으로 김치를 북북 찢고 있다. 손수 차린 상으로 MBC '나 혼자 산다'에 박나래와 함께 출연하는 동료들의 밥을 챙기고 있다. MBC 영상 캡처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영상에 '나래 씨 할아버지, 할머니는 시청자 모두의 할아버지, 할머니였다'는 내용의 댓글이 올라왔더라고요. 8년 전인데 많이들 기억하셨고요. 두 분이 등장하신 '여름 나래 학교' 편이 '무한도전' 무인도 편처럼 상징적인 회차가 된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이 작가: 촬영 전 답사를 갔거든요. 나래 할아버지, 할머니 먼저 뵙고요. 할머니는 정말 따뜻하셨어요. 할아버지는 방송에 대한 이해가 의외로 빠르셨고요. 알고 보니, 지역방송 리포터 출신이셨더라고요.
박나래: 돌이켜보니 '여름 나래 학교' 편이 우리 가족한테도 엄청 큰 의미였더라고요. 지역 방송에서 리포터를 하셨지만 할아버지는 '나혼산'으로 전국 방송을 데뷔하신 거잖아요? 주변에서도 엄청나게 알아보시고. 할아버지에겐 또 그 경험이 자부심으로 남으셨던 것 같아요. 두 분 돌아가시기 전 추억을 만들어드린 것 같아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요. 기안84 오빠랑 서로 '나혼산'에서 제일 좋았던 에피소드가 뭐냐는 얘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어요. 둘 다 똑같이 '여름 나래 학교' 편을 꼽았고요. 그래서 기안84 오빠한테 '아니, 그때 오빠 되게 힘들어하지 않았어?'라고 되물었더니 '고생해서 그런지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고생 고생해서 '여름 나래 학교' 계획표 짰더니 촬영할 때 다들 힘들다고 하니 그때 속으로 은근히 열받았었거든요(웃음).
이 작가: 새벽에 첫 기차 타고 내려가서 정말 고생 많이 했지, 다들.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키가 병원을 찾아 어머니 후배 간호사들에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키의 어머니는 수간호사 출신이다. 아들인 그가 어머니의 정년 퇴직을 축하하기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나혼산'이 갑자기 '효도 예능'이 된 이유
-'여름 나래 학교'뿐 아니라 샤이니 멤버 키가 간호사인 어머니 병원에 가 정년퇴직을 축하하는 에피소드 편 시청률(6.9%)도 요즘 평균보다 높더라고요. 1인 가구의 일상을 보여주는 게 기둥인 프로그램인데 왜 같이 사는 에피소드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을까요.
이 작가: 그만큼 현실에서 사람과 직접 만나 관계를 쌓는 일이 줄어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나혼산' 속 출연자들과 지인들의 동행을 통해 정을 느끼고요. 관계 얘기가 나와서 생각해 보니, 요즘 효도 관련 에피소드들이 꽤 나왔더라고요. 현무 오빠의 '효도 프로젝트', 돌아가신 할아버지·할머니 댁 찾아가 정리한 나래, 수간호사였던 어머니 퇴직 날 병원 찾아가 응원한 키 등요. '효도하자' 캠페인 할 것도 아니고 일부러 효도를 키워드로 아이템을 짠 건 당연히 아니었고요(웃음). '나혼산'이 시작된 지 10년을 훌쩍 넘어섰고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도 나이를 먹고 부모님도 퇴직하는 시기가 오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들이 비친 것 같아요. 키 보면서는 '엄마한테 저럴 수도 있구나'란 생각도 했고요. 효도가 뭔지 진짜 아득한 지경이었거든요. 출연자들 일상 보면서 저도 가족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반성도 하고요.
박나래: '나혼산'이라 진짜 혼자 있는 모습만 보여줘야 할 거 같잖아요? 그렇다고 이 관찰 예능이 재난 후 상황을 그린 영화 '28일 후' 같이 정말 나 혼자 살아남은 것도 아니고 집 밖에 나가면 바로 사람들이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혼자 사는 삶을 좋아하는 거지 혼자만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많고요. 저도 그쪽이거든요. 혼자는 살지만 혼자서만 지내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공감도 하고 위안도 받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2017년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왼쪽)와 박나래의 모습. MBC 영상 캡처
-벌써 10년이네요.
박나래: 전 제가 이렇게 낯을 가리는 줄 몰랐어요. '나혼산' 하고 마흔 다 돼서 뒤늦게 깨우쳤죠. 코미디언인데 낯 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더 방방 뛰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나혼산' 초기 때 (서울) 영등포에 작은 집에서 살았잖아요. 그때 제 나름 화려한 홈바를 만들어서 친구들을 초대했고요. 언젠가 한 시청자분이 제게 다가와서 조용히 말씀하더라고요. '저도 집에 홈바 차렸어요'라고. 그래서 '영업은 잘되세요?'라고 물었더니 '잘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홈바가 집이 으리으리하거나 대단한 결심을 해야 설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지금 내 환경에 맞게 소소하게 시작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떤 어머니들은 제가 이것저것 해보는 걸 보고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젊었을 때 그렇게 살았어야 하는 건데'라고요. 그런 말씀 들으니 '이렇게 내 방식대로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은 거구나' 싶더라고요.
코미디언 박나래가 이경하 작가가 하는 말을 귀 담아 듣고 있다. 강예진 기자
"'나혼산'으로 진짜 인생을 배워요"
-많은 사람의 일상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생긴 삶에 대한 지론 변화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작가: '나혼산' 시작할 때만 해도 거의 12시간씩 찍어 40여 분 내보내는 관찰 예능 제작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라 생각했어요. '지켜본다고 뭐가 나오겠어?'란 의심도 했고요.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을 관찰하다 보니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나와 다른 삶에 대한 이해랄까요. 농담 삼아 얘기하자면, 기안84를 처음 봤을 때 정리 안 하는 모습 보고 정말 이해를 못 했거든요. 이젠 그 친군 그냥 빨래를 벗어 주위에 놓을 뿐이고 내가 빨래통에 옷 넣는 게 너무 진심인 거지 뭐, 이렇게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박나래: 집에서 식물 장 만들어 반려 식물 키우는 옥자연 씨 같은 경우엔 저랑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보면서 또 이해되더라고요. 제가 격투기 경기 보며 도파민 터진 상황에서 빨리 밥 먹어야 했던 사람이라 전엔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한 공감이 잘 안 됐거든요. '나혼산'에서 다들 나 혼자 살면서 각자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10년을 하다 보니 그렇게 남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내 삶에 대입해 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 (화사가 명상할 때 쓰던) 싱잉볼도 샀잖아요. 그런데 두어 달 뒀다 처분했어요. 안 맞아요, 안 맞아(웃음). 가볍게 얘기했지만, '나혼산'으로 진짜 인생을 배우고 있다는 건 확실해요.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과 남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요. '나혼산' 식구끼리 서로 배우면서 같이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돌그룹 태사자 출신 김형준이 새벽에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는 모습.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연예인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지켜보는 게 아니라..."
-아이돌그룹 태사자 출신 김형준 씨가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는 에피소드를 보고 연예인의 다른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관음증적 관찰 예능의 틀을 깬 순간들이 꽤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작가: 기안84가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대청호 마라톤 완주하고 난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해외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두 번째로 완주했잖아요. 뜬금없이 마라톤에 도전한 게 아니라 집에서 오이도까지 1박 2일에 걸쳐 러닝하는 게 시작이었고요. (기안84는 2020년쯤 만화가로 번아웃이 왔다. 회사를 차리고 2년 동안 그가 쉰 날은 총 열흘 남짓. 마감에 쫓겨 앉아서 만화만 그리느라 그의 몸과 마음도 어긋났다.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보려 해도 마감을 못 지킬 것 같아 쉬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사무실 밖으로 나가 한 시간씩 서 있는 게 전부. 축 늘어진 몸과 마음을 일으켜보고자 그는 달리기에 전념했다.) 그렇게 기안84가 달리는 이유에 대한 서사가 쌓이기 시작했죠. 1박 2일 동안 달리는 데 그 절실함이 많이 느껴졌고요. 단순히 연예인들 잘 먹고 잘 사는 걸 지켜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성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고요.
기안84가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들고 완주선으로 들어오고 있다. MBC 제공
-하지만, 스카이뷰가 멋진 집에서의 스타의 일상이 '나혼산' 몰입에 걸림돌이 된다는 시청자도 있어요.
이 작가: 처음엔 성공한 아이돌 일상에서 보여줄 게 과연 뭐가 있을까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아이돌들의 성공도 쉬운 성취는 아니거든요. 음악프로그램 작가 생활을 했어요. 지금은 성공한 여러 아이돌의 어렸을 때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저 나이였을 때 과연 저들처럼 노력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여러 번 했죠. 전 못할 것 같거든요. 연습생 시절부터 고생하고 그 힘들었던 시간을 버텨내면서 얻은 어떤 성취도 소중한 게 아닐까요. 성실함으로 일군 거잖아요. '나혼산' 식구이기도 하지만(샤이니 멤버) 키도 정말 성실하거든요. 그 친구 같은 경우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어머니의 성실함을 보면서 자라 연예 활동에도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코미디언 박나래가 '개그콘서트'에서 귀신 역할로 땅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다. KBS 영상 캡처
"무대서 못 놀았던" 코미디언, 비주류 예능 작가의 '역전'
"'나래는 잘 안 보이는 코미디언이었죠. 다른 동료들이 화제가 더 많이 돼서." 코미디언 김준호는 KBS2 '개그콘서트'에서의 후배 박나래의 존재감을 이렇게 떠올렸다. 2006년 KBS 21기 공채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박나래는 김준호의 말처럼 '개그콘서트'에서 8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공포 영화 '링'의 귀신 역할을 '개그콘서트'에서 처음 맡아 귀신 분장을 하고 열심히 땅바닥을 기었지만 그는 두 달 만에 무대에서 사라졌다. 시청자 게시판에 "재미 없다"는 글들이 올라온 탓이다. "'무대에서 한 번 놀아보자'고 얘기하잖아요. 잘 못 놀았어요. '개그콘서트'는 제겐 너무 크고 무서운 무대였어요. '라디오 스타' 처음에 섭외 제안 왔을 때도 저 회사(전 소속사)에 처음으로 '못하겠다'고 했었어요. '보여줄 것도 없고 아무것도 못 하는데'라면서요. 저 방송 들어오면 다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삼천 배 하는 방송 섭외가 들어왔는데 저 그것도 한다고 했어요. 천주교 신자지만 일은 일이잖아요." 박나래는 20대에 이렇게 주눅 들어 있었다.
코미디언 박나래가 '나 혼자 산다' 흥행을 이끈 공로로 2018년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수상소감을 말하며 울고 있다. MBC 제공
코미디언인 그는 공교롭게 무대를 나와 무대 없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나혼산')에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약했다. '나혼산'의 흥행을 이끈 덕분에 2019년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 트로피까지 손에 거머쥐었다. 좌충우돌 성장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남을 먼저 대접하는 리더십이 박나래의 무기였다. 독한 말로 남을 깎아내리는 대신 센 분장('패션 넘버 5' 등)으로 자신이 망가지는 코미디의 길을 택했던 그가 관찰 예능에서 사는 법이었다. 이 작가도 박나래처럼 '역전의 명수'였다. 2002년 KBS '온 국민 하나되어 가자! 16강으로'란 월드컵 응원쇼로 방송 작가 일을 시작한 그는 '연예가 중계' '비타민' 등 비주류 예능 프로그램을 돌다 뒤늦게 '나혼산'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경청과 끈기'가 둘의 공통된 역전의 밑거름이었다. "다들 저 인내심 없을 거라 생각하는 데 보기보다 진득하게 앉아 3, 4시간 금방 보내는 스타일이에요. 바느질이 취미고요. '개그콘서트'에서 '패션 넘버5'할 때도 오랫동안 앉아 재봉틀 돌려가며 무대의상 다 제가 만들었거든요."(박나래)
코미디언 박나래가 도배를 하는 모습. MBC 제공
"콩트 망하면 내 인생이 망한 것 같더라"
-도배와 미장까지 배웠잖아요. 뻘뻘 땀을 흘리며 운동하고 일도 열심히 해 '쾌녀'라는 별명도 붙었고요. 전자음악 DJ도 하고 '나래바 사장'도 했고요. 이렇게 열심히 '또 다른 나'로 사는 사람도 흔치 않은 것 같아요.
박나래: 20대부터 공개 코미디를 오랫동안 했잖아요. 콩트를 정말 열심히 짰는데 그게 망하면 정말 제 인생이 망한 것 같더라고요. 코미디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오랫동안 실패하다 보니 도저히 힘들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바꿔 먹었죠. 코미디 말고 다른 것도 해보자고요. '하나가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또 다른 내가 되면 되니까'란 심정으로요. '코미디언 박나래가 실패하면 어때? DJ 박나래가 있는데' 이런 식인거죠. 그렇게 '나혼산'에서도 또 다른 나를 많이 찾았던 것 같아요. 도배와 미장은 주택에 혼자 살잖아요. 손 봐야 할 게 많더라고요. 집수리할 일이 생겨 도와주실 분들 구해보려고 하니 또 그분들이 엄청 바쁘시고요. 저도 일하느라 집을 비워야 하는 날이 많아 서로 일정 맞추기도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집수리 관련 일들을 하나씩 배워보자 했던 거죠. 배우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제가 직접 고쳐드리고 싶어서였고요. 배워보니 재미있더라고요. 도장이나 미장 학원에서 만난 분들을 통해 치열한 삶 얘기도 듣고요. 아, 혹 이사할 때 도배나 미장하는 분들 오시면 좀 잘해주세요. 진짜 고생하시거든요.
디제잉을 하고 있는 코미디언 박나래. 한화 유튜브 영상 캡처
-나 홀로 웨딩 촬영도 했잖아요.
박나래: 한창 운동해서 젊을 때 찍어두고 싶더라고요. 친구들 브라이덜 샤워(결혼 앞둔 신부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도 좋아하는데 전 왠지 못할 거 같은 거예요. 당장 결혼 계획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나 혼자 하자' 했던 거죠. 찍어 보니 당장 결혼 계획 없는 남자분들도 턱시도 입고 촬영하면 좋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이 작가: (전) 현무 오빠 왠지 할 거 같아(웃음).
코미디언 박나래(왼쪽)가 '나 혼자 산다' 촬영 뒷얘기를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을 이경하 작가가 웃으며 듣고 있다. 강예진 기자
"이거 안 될 것 같은데요?" '나혼산'의 위기
-그렇게 다양하게 꿈을 펼쳤지만 '나혼산'에서 고비도 있었어요. 나래 씨랑 기안84 씨랑 단둘이만 '나혼산' 진행할 때요.
이 작가: (전) 현무 오빠가 자리를 비웠을 때가 위기이긴 했죠.
박나래: 녹화 들어가기 직전까지 작가님이랑 PD님 붙잡고 '이거 안 될 거 같다'고 했어요. 촬영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막상 촬영 들어가서 이 오빠(기안84)를 보며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촬영 들어가니 서로 가만있다가 얼굴 보며 조용히 웃더라고요. 그 웃음이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난 거거든요. '나혼산' 촬영 스튜디오가 진짜 작은 편집실이거든요. 출연자들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 있어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되고요. 저나 기안84 오빠나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정말 컸거든요. '우리 때문에 망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정말 심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기안84 오빠가 '나래 씨 어떻게 지내셨어요?' 하는 데 아우, 정말 아닌 거 같은 거예요. 제작진을 딱 보는 데 막 웃으면서 그렇게 가라, 고 하더라고요? 한 3주는 그렇게 멘털이 나가 있었어요. 촬영 끝나면 작가님 붙잡고 '저 어떻게 해야 되죠?' 묻고. 그럼 또 작가님이 '잘했어, 잘했어'라고 유치원 선생님처럼 다독여주고. 그럼 전 또 불안해서 '이거 진짜 괜찮았어?' '아닌 거 같은데'라고 되묻고요(웃음).
코미디언 박나래와 전현무가 '나 혼자 산다'에서 그간 보이지 않던 벽으로 거리가 있었던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MBC 영상 캡처
-그 후 나래씨와 전현무 씨 사이 생겼던 어색한 거리를 두 사람이 최근 같이 산에 오르며 푼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전현무와 박나래도 '나혼산' 십년지기다. 남매 사이나 다름없었던 두 사람 사이엔 어느 순간 벽이 생겼다. 두 사람과 함께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전현무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서였다. "내외해야 한다고 해야 되나?" "오빠(전현무)랑 더 친하면 내가 의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 두 사람은 그간 적당히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최근 방송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대학교 같은 과 캠퍼스커플이었던 두 사람이 헤어지면서 관계가 꼬여버린 동기와 선후배들, 직장에서 선후배로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다 일로 싸운 뒤 돌연 서로 등을 돌리면서 모두 같이 모이는 자리가 어색해진 동료 사이 등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흔히 겪는 관계의 성장통이었다.)
이 작가: 둘이 서로 걱정하는 따뜻한 사이인데 뭔가 5%는 어색한 거예요. 주위의 관계 변화로 인한 어색함을 누구나 겪기 마련이라 이런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면 시청자분들도 공감할 거라 생각했어요.
이영자 송은이 김숙도 예능 10년 뿌리 내린 적 없는데
-10년 동안 리얼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 여성 코미디언은 나래씨가 처음인 것 같아요.
박나래: 현무 오빠나 기안84 오빠랑 저를 보고 성인 남녀가 서로 물을 끼얹어 등목을 해주는데 저렇게 자연스럽구나란 반응을 본 적이 있어요.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도 아니고 동기인데 그냥 나이 많은 오빠 같은 느낌이랄까요? 현무 오빠나 기안 오빠가 같이 할 수 있는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해 줘요. 무엇보다 '나혼산'엔 '이건 나래가 하기엔 좀' 이런 게 없어요(웃음). 코미디언으로서는 김숙 선배를 존경해요. 친하기도 하고요. 둘이 '무한도전' 예능 총회에서 똑같이 한 말이 있어요. '요즘 여자 예능인이 없다'고요. 공백엔 출산 이슈도 있을 수 있고요. '나혼산'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의 성이 아니라 다양한 '무지개성'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작가: 나래 보면서 신기한 게 사람이 참 안 질려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몇 년을 봤으면 좀 질려야 하는데 안 그렇거든요. 그게 나래의 능력인 것 같아요. 이젠 시청자분들도 나래를 진득하게 관찰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사실 그렇게 들여다보면 또 애정이 생기거든요. 나래도 나이 들어가고 자연스레 주변 상황도 바뀌고 그러면서 또 일상이 달라지잖아요. 나래가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길 물론 바라지만 혹 결혼 안 하고 계속 나이 들어도 보여줄 게 분명 있을 친구 같아요. 50대 넘어 갱년기를 겪으면 또 그 상황에 대해 가장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나래가 아닐까 싶거든요. 나래가 집에서 감 떨어진 거 치우는 데 그렇게 진심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웃음).
박나래: 감 얘기하니까 어제도 치우고 왔죠.
-코미디언뿐 아니라 여성 작가에게도 예능 제작 환경이 호의적이진 않잖아요.
이 작가: 사실 이번 추석 당일(6일)에도 '나혼산' 녹화하거든요. 한파 경보가 내려진 추운 날씨에 '언니, 날씨가 추워야 하는 아이템인데, 날씨가 추워서 촬영이 아주 잘됐어요'라고 해맑게 웃는 후배 작가가 있었어요. 후배들 보면서 많이 배웠죠. 같이 웃고 서로 응원해 주는 동료들이 있어 23년의 시간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박나래가 '코미디 빅리그'에서 한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 의 '기영이' 분장. 박나래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실패의 긍정, '나혼산' 콤비의 공통점
카르페디엠(Carpe Diem). 라틴어로 '오늘을 즐겨라'는 뜻이다. 박나래는 이 문구를 오랫동안 카톡 프로필에 걸어뒀다. 사연은 이랬다. 박나래는 고1 때 가족과 떨어져 안양에서 살았다. 예고를 다니기 위해서였다. 추석 즈음, 그는 아버지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우리 딸 보고 싶다"는 안부였다. 평소 워낙 무뚝뚝했던 아버지라 딸(박나래)은 약주를 드시고 한 전화인 줄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별걱정 없이 내려간 집, 그의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지병을 앓던 그의 아버지가 숨을 거둔 것이다. 17세 때 박나래는 삶과 죽음이 가깝게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 이후, 박나래의 머리에선 '내일 죽는다면 오늘 뭐 해야 할까'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매 순간 나답게 살려고" 그가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학에 입학한 뒤 그는 인형극 아르바이트, 단편 영화 엑스트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다. 100번 넘게 떨어졌지만 오디션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 시절에 딛고 일어날 수 있는 바닥을 다진 것 같아요." 박나래는 실패를 이렇게 '긍정'했다. 박나래는 에세이 '웰컴 나래바! 놀아라, 내일이 없는 것처럼'(2017)에 '야채볶음밥이 먹고 싶어 라면 플레이크를 불려 먹어도 그게 힘들다는 생각을 못 했다'고 썼다. 긍정은 이 작가의 힘이기도 했다. "다음에도 일찍 나와 또 밤 11시, 12시까지 녹화하겠죠. 분명 피곤하겠지만 다 같이 깔깔 웃을 테고요. 그래서 이 일을 20년 넘게 버텼다기보다 그냥 뚜벅뚜벅 걸어왔던 것 같아요."
지난 6월 '나 혼자 산다'는 600회를 맞았다. 박나래(앞줄 왼쪽 첫 번째) 등이 기념 촬영을 했다. MBC 제공
"밥 챙겨주는 보시" "서로 어색하게 만났지만"
-'환상의 콤비' 시그니처 질문입니다. 연예계에 유명한 말 있잖아요. 제작진은 '분칠 한 것들(연예인) 믿으면 안 돼'라고 하고, 출연자들은 '어우 진짜 방송사 놈들'이라며 이를 갈고. 서로 어떻게 관계가 깊어졌나요?
이 작가: 코미디언으로서 나래에 대한 믿음은 '나혼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있었어요. 다른 방송에서 잘해왔고 '뭐, 잘하겠지' 싶었으니까요. 다만, 제가 사람을 쉬 믿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불신까진 아니고 의심을 하고 지켜보면 결국 그 사람의 속내가 나오기 마련이고요. 관찰 예능은 특성상 출연자의 진심이 어느 순간 뚫고 나올 수밖에 없어요. 만약 그 진심이 상대에 전달되지 못하면 생명력이 확 짧아지는 거고요. 관찰 예능을 통해 10년 동안 나래를 지켜보면서 '참 진심이구나'를 느낀 순간들이 많았어요.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서 '기세녀'로 뛰어다닐 때나 '쌩얼'로 주위 신경 쓰지 않고 땀 뻘뻘 흘리며 일할 때에요. "나래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걸 보며 많이 배우려 한다"고 지난해 시상식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뒤) 말한 적이 있는데 정말 주변을 잘 챙겨요. 특히 혼자 사는 친구들한테 많이 퍼주죠. 지난겨울, 나래가 집에서 (정)재형 오빠랑 김장했잖아요? 그 김치, 제작진도 한 통 받았어요. 일 바빠 제때 밥 못 챙겨 먹고 사무실에서 컵라면 먹을 때 그 김치에 먹고 그랬죠. 불교 믿는 제 할머니께서 '배고픈 사람한테 밥 챙겨주는 게 가장 큰 보시'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사는 저보다 어린 친구(박나래)를 처음 본 거죠.
박나래: 아, 그 김치 진짜 맛있었는데(웃음). 이 작가님과는 사실 '나혼산'에서 PD, 작가 다 바뀌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서로 어색하게 만났어요. 우리끼리 '방송국 놈들' 이라고 하는 건 프로그램 자극적으로 만들려면 진짜 끝이 없거든요. 관찰 예능이고 리얼이다 보니 촬영하면서도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을 때가 있는데 이 작가님이 그걸 잘 지켜주시죠. '나혼산' 감독판 나오면 아.. 저희는 그냥 끝날 거예요.
'나 혼자 산다'에서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를 주제로 촬영하고 있는 박나래(왼쪽 첫 번째)와 한혜진(가운데) 그리고 화사. MBC 영상 캡처
-그러니 '여은파' 감독판이 더 궁금해지는데요?
(박나래는 한혜진, 화사와 함께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를 주제로 '나혼산' 속편을 꾸렸다. 촬영 일부는 전파를 탔고, 일부는 유튜브에 따로 공개됐다.)
박나래: 그건 진짜 안 돼요. 유료 채널로 가야 돼요(웃음).
싱싱한 방어 올라왔어요! '나래 카세'의 등장
-좀 전에 음식 나눔 얘기로 돌아가면 그래서 나래 씨 방송 중 유독 음식 만드는 에피소드가 많은가 봐요.
이 작가: 나래가 집에서 혼자 전 부치고 명절 음식 만들어 혼자 사는 지인들이나 오은영 선생님 같은 어른들께 나눠주잖아요? 그게 방송용 이벤트가 아녜요. 진짜 일상이에요. '나혼산' 나래 담당 작가가 그냥 평상시 안부처럼 나래한테 '추석에 뭐 해?'라고 카톡으로 물어봤나 봐요. 나래가 '전 부쳐야지. 사람들 불러서 같이 먹고 나눠도 주고'라고 답하고요. 그렇게 대화하다 '그럼 그냥 그걸 찍자' 이렇게 된 거죠. 평상시에 그렇게 살고 있으니(웃음).
박나래: 그렇게 같이 음식 먹는 걸 좋아해요. 고향에서 방어나 낙지 올라오면 시간 되는 사람들 번개로 모여 우리 집에서 같이 먹죠. 많이 모였을 때는 15명까지 왔던 것 같아요.
코미디언 박나래가 트로트 가수 박지현을 집으로 초대해 전을 부쳐 입에 넣어주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같이 먹는 데 정말 진심이군요.
박나래: 제작 환경이 그래서 더 그러는 것 같아요. 관찰 예능이다 보니 제작진이 개입을 안 하려고는 하는데, 카메라에 잡히진 않지만 촬영 때 제작진들이 좁은 방에서 모니터링을 하거든요. 고향인 목포로 내려갔을 때도 엄마가 떡이랑 과일 그리고 밥이랑 반찬이랑 차려 제작진에 주는데 괜찮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엄마가 '제작진 먼저 다 먹기 전엔 우리(엄마와 나)도 밥 안 먹겠다'고 해서 먼저 밥을 챙겼죠. 할머니도 마찬가지셨고요. '여름 나래 학교' 촬영 갔을 때도 제작진이 죄송해서 밥 괜찮다고 하면 할머니가 '그럼 나도 안 먹겠다'고 해서 같이 먹고요. 그냥 우리 집 분위기가 그래요.
전현무와 박나래, 이장우가 함께 체중 감량을 하고 화보 촬영을 하고 있다. 세 사람은 '나 혼자 산다'에서 함께 먹는 걸 즐기는 '팜유' 멤버다. 박나래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언젠까지 나혼자? 다들 눈치 싸움 중"
-그래서 나래 씨는 언제까지 나 혼자 살 건가요?
박나래: 은근히 눈치 싸움 중이거든요. '너보다는 내가 먼저 간다' 이러면서요. 전 40대 초반엔 결혼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시잖아요, 그게 마음먹는 대로 안 되는 거. 현무, 기안84 오빠도 보내야 되고요. 최근에 (이)장우를 보내서 그나마 다행인 것 같긴 해요(웃음).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함께 도전해 세상의 편견을 지우고 변화를 이끈 대중문화 단짝들 인터뷰.
코미디언 박나래(왼쪽)와 이경하 작가는 2016년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 합류한 '입주 동기'다. 올해 10년째 프로그램을 함께 이끌고 있는 두 사람을 '환상의 콤비' 인터뷰를 위해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났다. 강예진 기자
꼭 잠겨진 하늘색 철제 녹슨 대문 앞. 코미디언 박나래는 문을 열자마자 한 발짝도 못 떼고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소리 내 울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나래 왔어. 아 어떡해". 친손녀의 눈 신용경색 물 젖은 인사에 돌아온 건 적막뿐. 마당 앞 평상 주위엔 잡초가 박나래의 키만큼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그가 고향에 내려가면 할머니가 손으로 묵은 김치 북북 찢어 김 폴폴 나는 고봉밥에 올려주던 자리였다.
"언젠 같이 고생 안 했냐" 전현무, 기안84의 진심
박나래는 최근 전남 전세보증금반환청구 무안에 있는 조부모의 빈 집을 찾았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박나래는 2023년 할아버지를, 올 6월엔 할머니를 차례로 여의었다. 그는 어려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손에서 컸다. 식구는 많은데 방은 부족한 집에서 두 살 때부터 여덟 살까지 조부모와 같은 방을 썼다. 그렇게 살을 비비며 부모처럼 키워준 할아버지, 할머니가 모두 세상을 떠나자 박나래는 무너 농협1000만원대출 졌다. "할머니 돌아가셨을 땐 너무 충격을 받아 휴대폰도 못 가지고 내려갔어요. 운전을 도저히 못 하겠어서 대리 불러서 갔고요."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에서 만난 박나래의 말이다.
박나래가 이렇게 애끊는 슬픔을 딛고 조부모 집에 유품을 정리하러 발을 들였을 때 그의 옆엔 방송인 전현무와 기안84가 있었다. 둘이 박나래의 고 아파트 매매시 필요서류 행길 동행을 자원했다. 전현무, 기안84와 박나래 조부모와의 인연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현무와 기안84는 2017년 여름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이하 '나혼산') 속 '여름 나래 학교' 특집을 통해 박나래 조부모의 집에서 1박 2일 동안 먹고 잤다. 그렇게 내리사랑을 길고 짧게 받은 세 사람이 무성한 잡초를 뽑고 못 쓰는 물건을 군미필무직자 분류해 버린 쓰레기 분량만 4톤. "할머니 돌아가시고 (집) 정리를 해야 하는 데 도저히 못 하겠는 거예요. 제 손으로 직접 하고 싶어 미장이랑 도배도 배웠거든요. 유품을 마주할 마음이 준비가 안 된 거죠. 그렇게 몇 달을 제가 회피하니까 '도와줄게, 같이 가자'고 하더라고요. 전현무, 기안84 오빠에 '진짜 가 줄 거야, 고생일 텐데?'라고 되물었더니 '언젠 같이 고생 안 했냐?'면서요."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의 유품 정리 모습을 보고 유튜브에 남긴 시청자 댓글.
MBC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의 유품 정리 모습을 보고 유튜브에 남긴 시청자 댓글.
박나래가 돌아가신 조부모 집을 찾아가 유품을 정리하다 슬픔에 잠겨 울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떠난 자리 정리하는 법을 언제 배우겠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 지난달 26일 방송된 박나래의 '다녀왔습니다' 편은 유튜브에 공개된 예고 영상만 159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평균 10만 건 남짓이던 다른 방송 회차보다 10배는 많은 수치로, 지난 1년간 유튜브에 올려진 '나혼산' 예고 영상 중 조회수가 가장 높았다. 이번 에피소드에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얘기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엔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너무 나서 슬펐어요. 2년 다 돼가는 시간 동안 엄마 물건 하나도 못 버리고, 엄마 향기 남은 옷 두 벌에 손수건 한 장은 빨지도 못하고 방에 걸어두고 한 번씩 맡아요. 점점 약해지는 엄마 향이 무서워요'(@Always_Happy_****), ''우리가 살면서 소중한 사람을 보내는 법,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법을 배울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충분히 슬퍼하고 이별하세요'(@HCblu***) 등의 댓글이 달렸다. 내가 직접 겪은 일에 남의 표정과 말로 전해 듣는 간접 경험이 섞여 발효되면서 사람들은 좀 더 깊이 있게 인생을 맛보기 마련이다. "관음증을 부추긴다"라며 때론 손가락질받는 관찰 예능이 생과 사가 교차하는 순간을 묵묵히 따라갈 때 보여줄 수 있는 미덕이다. '나혼산'이 '더불어 산다'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코미디언 박나래와 그가 출연하는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이경하 작가. 이 작가 제공
험난한 관찰 예능 10년 동지와 '무지개 정신'
유품 정리를 한 박나래는 '나혼산'을 통해 그렇게 또 한 번 '어른'이 됐다. 그는 2016년 9월 이 프로그램에 합류해 올 9월 10년 차에 접어들었다. 여성 코미디언이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 10년 동안 고정 출연하기는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영자와 송은이, 김숙도 한 프로그램에 7, 8년 이상 뿌리내린 적 없다. 강호동, 신동엽, 유재석 등 한 예능프로그램에 10년 넘게 터를 잡은 남성 코미디언들은 여럿이지만, 여성 코미디언들은 상대적으로 쉬 교체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은밀한 파티 기획자 '조지나'부터 석회와 염료를 개 친구의 작업실 벽을 단장해 준 '박미장'까지. 박나래는 쉴 틈 없이 변화하며 '나혼산'에서 10년을 생존했다. 수많은 도전 앞에 그를 이끌어준 여성이 있다. 이경하, 2016년 11월부터 '나혼산'을 꾸려온 작가다. 2016년 '나혼산' 입주 동기인 두 사람은 '관찰 예능 동지'로 험난한 길을 10년 동안 헤쳐왔다. 폐지 위기도 있었지만, 줄기차게 시도했고 뜻을 이뤘다. 괜히 '환상의 콤비'가 아니었다.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다". 두 사람은 이렇게 똑같이 다양성의 가치 즉 '무지개 정신'을 오랜 생존의 비결로 꼽았다.
"8년 전엔 그렇게 힘들다더니" 그렇게 된 '어른'
-'다녀왔습니다' 보니 울컥하더라고요. 할머니가 나래 씨한테 보내려고 만들어 미처 서울로 못 부친 김치, 냉장고에 그대로 있고. 유품 정리가 쉽지 않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박나래: '나혼산' 식구들한테 정말 고마워요.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다 빈소에 와주셨거든요. 서울에서 무안까지 오기 진짜 쉽지 않은데요.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는 제가 정말 너무 충격을 받아서 장례 일정을 '나혼산' 식구들한테 아예 알리지 않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나혼산' 식구들을 빈소에서 보니 울컥한 거예요. 그랬다가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다시 갔는데 막상 두 분이 없으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돌아가시기 전에 두 분이 계속 '나혼산' 식구들 안부를 물었거든요. '전 회장님(전현무)은?' '기안이는?' 하시면서요. 이번에 방송 나가기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 빈 집에 관한 얘기를 '나혼산' 식구들이랑 오랫동안 했어요. 다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를 아니까요. '집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은데 내가 못 할 거 같다'고 했죠. 마음의 준비가 안 됐었거든요. 그러면 또 '나혼산' 식구들이 '우리가 도와줄 게 같이 가자'고 하고요. 방송 아이템 차원으로 한 말이 아니었어요.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날 (전)현무, 기안84 오빠가 단톡에서 '같이 가자'고 먼저 말해주더라고요.
전현무(왼쪽)와 박나래(가운데), 기안84는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친남매처럼 지낸다. MBC 제공
이 작가: 현무 오빠랑 기안84는 나래 할머니가 손으로 직접 찢어준 김치도 먹어봤잖아요. 나래를 친동생처럼 여기기도 하고요. 나래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시고 틈틈이 저한테 묻더라고요. '나래 괜찮대?' '뭐 도와줄 거 없어?'라고요. 옆에서 보다 '주민등록등본에 양 오빠 1, 2로 같이 올려야 되는 거 아닌가'란 생각까지 했다니까요(웃음).
박나래의 할머니(왼쪽)가 손으로 김치를 북북 찢고 있다. 손수 차린 상으로 MBC '나 혼자 산다'에 박나래와 함께 출연하는 동료들의 밥을 챙기고 있다. MBC 영상 캡처
-유튜브에 올라온 관련 영상에 '나래 씨 할아버지, 할머니는 시청자 모두의 할아버지, 할머니였다'는 내용의 댓글이 올라왔더라고요. 8년 전인데 많이들 기억하셨고요. 두 분이 등장하신 '여름 나래 학교' 편이 '무한도전' 무인도 편처럼 상징적인 회차가 된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
이 작가: 촬영 전 답사를 갔거든요. 나래 할아버지, 할머니 먼저 뵙고요. 할머니는 정말 따뜻하셨어요. 할아버지는 방송에 대한 이해가 의외로 빠르셨고요. 알고 보니, 지역방송 리포터 출신이셨더라고요.
박나래: 돌이켜보니 '여름 나래 학교' 편이 우리 가족한테도 엄청 큰 의미였더라고요. 지역 방송에서 리포터를 하셨지만 할아버지는 '나혼산'으로 전국 방송을 데뷔하신 거잖아요? 주변에서도 엄청나게 알아보시고. 할아버지에겐 또 그 경험이 자부심으로 남으셨던 것 같아요. 두 분 돌아가시기 전 추억을 만들어드린 것 같아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요. 기안84 오빠랑 서로 '나혼산'에서 제일 좋았던 에피소드가 뭐냐는 얘기를 주고받은 적이 있어요. 둘 다 똑같이 '여름 나래 학교' 편을 꼽았고요. 그래서 기안84 오빠한테 '아니, 그때 오빠 되게 힘들어하지 않았어?'라고 되물었더니 '고생해서 그런지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고생 고생해서 '여름 나래 학교' 계획표 짰더니 촬영할 때 다들 힘들다고 하니 그때 속으로 은근히 열받았었거든요(웃음).
이 작가: 새벽에 첫 기차 타고 내려가서 정말 고생 많이 했지, 다들.
아이돌그룹 샤이니 멤버 키가 병원을 찾아 어머니 후배 간호사들에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키의 어머니는 수간호사 출신이다. 아들인 그가 어머니의 정년 퇴직을 축하하기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나혼산'이 갑자기 '효도 예능'이 된 이유
-'여름 나래 학교'뿐 아니라 샤이니 멤버 키가 간호사인 어머니 병원에 가 정년퇴직을 축하하는 에피소드 편 시청률(6.9%)도 요즘 평균보다 높더라고요. 1인 가구의 일상을 보여주는 게 기둥인 프로그램인데 왜 같이 사는 에피소드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을까요.
이 작가: 그만큼 현실에서 사람과 직접 만나 관계를 쌓는 일이 줄어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나혼산' 속 출연자들과 지인들의 동행을 통해 정을 느끼고요. 관계 얘기가 나와서 생각해 보니, 요즘 효도 관련 에피소드들이 꽤 나왔더라고요. 현무 오빠의 '효도 프로젝트', 돌아가신 할아버지·할머니 댁 찾아가 정리한 나래, 수간호사였던 어머니 퇴직 날 병원 찾아가 응원한 키 등요. '효도하자' 캠페인 할 것도 아니고 일부러 효도를 키워드로 아이템을 짠 건 당연히 아니었고요(웃음). '나혼산'이 시작된 지 10년을 훌쩍 넘어섰고 그 과정에서 출연자들도 나이를 먹고 부모님도 퇴직하는 시기가 오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들이 비친 것 같아요. 키 보면서는 '엄마한테 저럴 수도 있구나'란 생각도 했고요. 효도가 뭔지 진짜 아득한 지경이었거든요. 출연자들 일상 보면서 저도 가족을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반성도 하고요.
박나래: '나혼산'이라 진짜 혼자 있는 모습만 보여줘야 할 거 같잖아요? 그렇다고 이 관찰 예능이 재난 후 상황을 그린 영화 '28일 후' 같이 정말 나 혼자 살아남은 것도 아니고 집 밖에 나가면 바로 사람들이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혼자 사는 삶을 좋아하는 거지 혼자만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많고요. 저도 그쪽이거든요. 혼자는 살지만 혼자서만 지내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공감도 하고 위안도 받고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2017년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왼쪽)와 박나래의 모습. MBC 영상 캡처
-벌써 10년이네요.
박나래: 전 제가 이렇게 낯을 가리는 줄 몰랐어요. '나혼산' 하고 마흔 다 돼서 뒤늦게 깨우쳤죠. 코미디언인데 낯 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더 방방 뛰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나혼산' 초기 때 (서울) 영등포에 작은 집에서 살았잖아요. 그때 제 나름 화려한 홈바를 만들어서 친구들을 초대했고요. 언젠가 한 시청자분이 제게 다가와서 조용히 말씀하더라고요. '저도 집에 홈바 차렸어요'라고. 그래서 '영업은 잘되세요?'라고 물었더니 '잘되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홈바가 집이 으리으리하거나 대단한 결심을 해야 설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지금 내 환경에 맞게 소소하게 시작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어떤 어머니들은 제가 이것저것 해보는 걸 보고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젊었을 때 그렇게 살았어야 하는 건데'라고요. 그런 말씀 들으니 '이렇게 내 방식대로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은 거구나' 싶더라고요.
코미디언 박나래가 이경하 작가가 하는 말을 귀 담아 듣고 있다. 강예진 기자
"'나혼산'으로 진짜 인생을 배워요"
-많은 사람의 일상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생긴 삶에 대한 지론 변화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작가: '나혼산' 시작할 때만 해도 거의 12시간씩 찍어 40여 분 내보내는 관찰 예능 제작 시스템이 비효율적이라 생각했어요. '지켜본다고 뭐가 나오겠어?'란 의심도 했고요.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을 관찰하다 보니 안 보이던 게 보이더라고요. 나와 다른 삶에 대한 이해랄까요. 농담 삼아 얘기하자면, 기안84를 처음 봤을 때 정리 안 하는 모습 보고 정말 이해를 못 했거든요. 이젠 그 친군 그냥 빨래를 벗어 주위에 놓을 뿐이고 내가 빨래통에 옷 넣는 게 너무 진심인 거지 뭐, 이렇게 생각도 하게 되더라고요(웃음).
박나래: 집에서 식물 장 만들어 반려 식물 키우는 옥자연 씨 같은 경우엔 저랑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삶을 살고 계시거든요. 그런데 보면서 또 이해되더라고요. 제가 격투기 경기 보며 도파민 터진 상황에서 빨리 밥 먹어야 했던 사람이라 전엔 느리게 사는 삶에 대한 공감이 잘 안 됐거든요. '나혼산'에서 다들 나 혼자 살면서 각자 얘기를 하고 있잖아요? 10년을 하다 보니 그렇게 남의 삶을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내 삶에 대입해 보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 (화사가 명상할 때 쓰던) 싱잉볼도 샀잖아요. 그런데 두어 달 뒀다 처분했어요. 안 맞아요, 안 맞아(웃음). 가볍게 얘기했지만, '나혼산'으로 진짜 인생을 배우고 있다는 건 확실해요.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과 남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요. '나혼산' 식구끼리 서로 배우면서 같이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돌그룹 태사자 출신 김형준이 새벽에 택배 기사로 일하고 있는 모습.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연예인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지켜보는 게 아니라..."
-아이돌그룹 태사자 출신 김형준 씨가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는 에피소드를 보고 연예인의 다른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관음증적 관찰 예능의 틀을 깬 순간들이 꽤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작가: 기안84가 마라톤에 도전했을 때가 기억에 남아요. 대청호 마라톤 완주하고 난 뒤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해외에서 마라톤 풀코스를 두 번째로 완주했잖아요. 뜬금없이 마라톤에 도전한 게 아니라 집에서 오이도까지 1박 2일에 걸쳐 러닝하는 게 시작이었고요. (기안84는 2020년쯤 만화가로 번아웃이 왔다. 회사를 차리고 2년 동안 그가 쉰 날은 총 열흘 남짓. 마감에 쫓겨 앉아서 만화만 그리느라 그의 몸과 마음도 어긋났다.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보려 해도 마감을 못 지킬 것 같아 쉬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시기였다. 그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사무실 밖으로 나가 한 시간씩 서 있는 게 전부. 축 늘어진 몸과 마음을 일으켜보고자 그는 달리기에 전념했다.) 그렇게 기안84가 달리는 이유에 대한 서사가 쌓이기 시작했죠. 1박 2일 동안 달리는 데 그 절실함이 많이 느껴졌고요. 단순히 연예인들 잘 먹고 잘 사는 걸 지켜보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성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고요.
기안84가 지난해 미국 뉴욕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참석해 태극기를 들고 완주선으로 들어오고 있다. MBC 제공
-하지만, 스카이뷰가 멋진 집에서의 스타의 일상이 '나혼산' 몰입에 걸림돌이 된다는 시청자도 있어요.
이 작가: 처음엔 성공한 아이돌 일상에서 보여줄 게 과연 뭐가 있을까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아이돌들의 성공도 쉬운 성취는 아니거든요. 음악프로그램 작가 생활을 했어요. 지금은 성공한 여러 아이돌의 어렸을 때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저 나이였을 때 과연 저들처럼 노력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여러 번 했죠. 전 못할 것 같거든요. 연습생 시절부터 고생하고 그 힘들었던 시간을 버텨내면서 얻은 어떤 성취도 소중한 게 아닐까요. 성실함으로 일군 거잖아요. '나혼산' 식구이기도 하지만(샤이니 멤버) 키도 정말 성실하거든요. 그 친구 같은 경우엔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던 어머니의 성실함을 보면서 자라 연예 활동에도 그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코미디언 박나래가 '개그콘서트'에서 귀신 역할로 땅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다. KBS 영상 캡처
"무대서 못 놀았던" 코미디언, 비주류 예능 작가의 '역전'
"'나래는 잘 안 보이는 코미디언이었죠. 다른 동료들이 화제가 더 많이 돼서." 코미디언 김준호는 KBS2 '개그콘서트'에서의 후배 박나래의 존재감을 이렇게 떠올렸다. 2006년 KBS 21기 공채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박나래는 김준호의 말처럼 '개그콘서트'에서 8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공포 영화 '링'의 귀신 역할을 '개그콘서트'에서 처음 맡아 귀신 분장을 하고 열심히 땅바닥을 기었지만 그는 두 달 만에 무대에서 사라졌다. 시청자 게시판에 "재미 없다"는 글들이 올라온 탓이다. "'무대에서 한 번 놀아보자'고 얘기하잖아요. 잘 못 놀았어요. '개그콘서트'는 제겐 너무 크고 무서운 무대였어요. '라디오 스타' 처음에 섭외 제안 왔을 때도 저 회사(전 소속사)에 처음으로 '못하겠다'고 했었어요. '보여줄 것도 없고 아무것도 못 하는데'라면서요. 저 방송 들어오면 다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삼천 배 하는 방송 섭외가 들어왔는데 저 그것도 한다고 했어요. 천주교 신자지만 일은 일이잖아요." 박나래는 20대에 이렇게 주눅 들어 있었다.
코미디언 박나래가 '나 혼자 산다' 흥행을 이끈 공로로 2018년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뒤 수상소감을 말하며 울고 있다. MBC 제공
코미디언인 그는 공교롭게 무대를 나와 무대 없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나혼산')에서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활약했다. '나혼산'의 흥행을 이끈 덕분에 2019년 MBC '연예대상'에서 대상 트로피까지 손에 거머쥐었다. 좌충우돌 성장을 꾸밈없이 보여주고 남을 먼저 대접하는 리더십이 박나래의 무기였다. 독한 말로 남을 깎아내리는 대신 센 분장('패션 넘버 5' 등)으로 자신이 망가지는 코미디의 길을 택했던 그가 관찰 예능에서 사는 법이었다. 이 작가도 박나래처럼 '역전의 명수'였다. 2002년 KBS '온 국민 하나되어 가자! 16강으로'란 월드컵 응원쇼로 방송 작가 일을 시작한 그는 '연예가 중계' '비타민' 등 비주류 예능 프로그램을 돌다 뒤늦게 '나혼산'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경청과 끈기'가 둘의 공통된 역전의 밑거름이었다. "다들 저 인내심 없을 거라 생각하는 데 보기보다 진득하게 앉아 3, 4시간 금방 보내는 스타일이에요. 바느질이 취미고요. '개그콘서트'에서 '패션 넘버5'할 때도 오랫동안 앉아 재봉틀 돌려가며 무대의상 다 제가 만들었거든요."(박나래)
코미디언 박나래가 도배를 하는 모습. MBC 제공
"콩트 망하면 내 인생이 망한 것 같더라"
-도배와 미장까지 배웠잖아요. 뻘뻘 땀을 흘리며 운동하고 일도 열심히 해 '쾌녀'라는 별명도 붙었고요. 전자음악 DJ도 하고 '나래바 사장'도 했고요. 이렇게 열심히 '또 다른 나'로 사는 사람도 흔치 않은 것 같아요.
박나래: 20대부터 공개 코미디를 오랫동안 했잖아요. 콩트를 정말 열심히 짰는데 그게 망하면 정말 제 인생이 망한 것 같더라고요. 코미디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오랫동안 실패하다 보니 도저히 힘들어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마음을 바꿔 먹었죠. 코미디 말고 다른 것도 해보자고요. '하나가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또 다른 내가 되면 되니까'란 심정으로요. '코미디언 박나래가 실패하면 어때? DJ 박나래가 있는데' 이런 식인거죠. 그렇게 '나혼산'에서도 또 다른 나를 많이 찾았던 것 같아요. 도배와 미장은 주택에 혼자 살잖아요. 손 봐야 할 게 많더라고요. 집수리할 일이 생겨 도와주실 분들 구해보려고 하니 또 그분들이 엄청 바쁘시고요. 저도 일하느라 집을 비워야 하는 날이 많아 서로 일정 맞추기도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집수리 관련 일들을 하나씩 배워보자 했던 거죠. 배우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할아버지, 할머니 집을 제가 직접 고쳐드리고 싶어서였고요. 배워보니 재미있더라고요. 도장이나 미장 학원에서 만난 분들을 통해 치열한 삶 얘기도 듣고요. 아, 혹 이사할 때 도배나 미장하는 분들 오시면 좀 잘해주세요. 진짜 고생하시거든요.
디제잉을 하고 있는 코미디언 박나래. 한화 유튜브 영상 캡처
-나 홀로 웨딩 촬영도 했잖아요.
박나래: 한창 운동해서 젊을 때 찍어두고 싶더라고요. 친구들 브라이덜 샤워(결혼 앞둔 신부를 축하하기 위한 파티)도 좋아하는데 전 왠지 못할 거 같은 거예요. 당장 결혼 계획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나 혼자 하자' 했던 거죠. 찍어 보니 당장 결혼 계획 없는 남자분들도 턱시도 입고 촬영하면 좋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이 작가: (전) 현무 오빠 왠지 할 거 같아(웃음).
코미디언 박나래(왼쪽)가 '나 혼자 산다' 촬영 뒷얘기를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을 이경하 작가가 웃으며 듣고 있다. 강예진 기자
"이거 안 될 것 같은데요?" '나혼산'의 위기
-그렇게 다양하게 꿈을 펼쳤지만 '나혼산'에서 고비도 있었어요. 나래 씨랑 기안84 씨랑 단둘이만 '나혼산' 진행할 때요.
이 작가: (전) 현무 오빠가 자리를 비웠을 때가 위기이긴 했죠.
박나래: 녹화 들어가기 직전까지 작가님이랑 PD님 붙잡고 '이거 안 될 거 같다'고 했어요. 촬영 자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막상 촬영 들어가서 이 오빠(기안84)를 보며 어떤 얘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촬영 들어가니 서로 가만있다가 얼굴 보며 조용히 웃더라고요. 그 웃음이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난 거거든요. '나혼산' 촬영 스튜디오가 진짜 작은 편집실이거든요. 출연자들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 있어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되고요. 저나 기안84 오빠나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정말 컸거든요. '우리 때문에 망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정말 심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기안84 오빠가 '나래 씨 어떻게 지내셨어요?' 하는 데 아우, 정말 아닌 거 같은 거예요. 제작진을 딱 보는 데 막 웃으면서 그렇게 가라, 고 하더라고요? 한 3주는 그렇게 멘털이 나가 있었어요. 촬영 끝나면 작가님 붙잡고 '저 어떻게 해야 되죠?' 묻고. 그럼 또 작가님이 '잘했어, 잘했어'라고 유치원 선생님처럼 다독여주고. 그럼 전 또 불안해서 '이거 진짜 괜찮았어?' '아닌 거 같은데'라고 되묻고요(웃음).
코미디언 박나래와 전현무가 '나 혼자 산다'에서 그간 보이지 않던 벽으로 거리가 있었던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MBC 영상 캡처
-그 후 나래씨와 전현무 씨 사이 생겼던 어색한 거리를 두 사람이 최근 같이 산에 오르며 푼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전현무와 박나래도 '나혼산' 십년지기다. 남매 사이나 다름없었던 두 사람 사이엔 어느 순간 벽이 생겼다. 두 사람과 함께 친하게 지내던 사람과 전현무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서였다. "내외해야 한다고 해야 되나?" "오빠(전현무)랑 더 친하면 내가 의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 두 사람은 그간 적당히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최근 방송에서 이렇게 털어놨다. 대학교 같은 과 캠퍼스커플이었던 두 사람이 헤어지면서 관계가 꼬여버린 동기와 선후배들, 직장에서 선후배로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다 일로 싸운 뒤 돌연 서로 등을 돌리면서 모두 같이 모이는 자리가 어색해진 동료 사이 등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흔히 겪는 관계의 성장통이었다.)
이 작가: 둘이 서로 걱정하는 따뜻한 사이인데 뭔가 5%는 어색한 거예요. 주위의 관계 변화로 인한 어색함을 누구나 겪기 마련이라 이런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주면 시청자분들도 공감할 거라 생각했어요.
이영자 송은이 김숙도 예능 10년 뿌리 내린 적 없는데
-10년 동안 리얼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한 여성 코미디언은 나래씨가 처음인 것 같아요.
박나래: 현무 오빠나 기안84 오빠랑 저를 보고 성인 남녀가 서로 물을 끼얹어 등목을 해주는데 저렇게 자연스럽구나란 반응을 본 적이 있어요.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도 아니고 동기인데 그냥 나이 많은 오빠 같은 느낌이랄까요? 현무 오빠나 기안 오빠가 같이 할 수 있는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해 줘요. 무엇보다 '나혼산'엔 '이건 나래가 하기엔 좀' 이런 게 없어요(웃음). 코미디언으로서는 김숙 선배를 존경해요. 친하기도 하고요. 둘이 '무한도전' 예능 총회에서 똑같이 한 말이 있어요. '요즘 여자 예능인이 없다'고요. 공백엔 출산 이슈도 있을 수 있고요. '나혼산'을 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를 하나의 성이 아니라 다양한 '무지개성'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작가: 나래 보면서 신기한 게 사람이 참 안 질려요. 같은 프로그램에서 몇 년을 봤으면 좀 질려야 하는데 안 그렇거든요. 그게 나래의 능력인 것 같아요. 이젠 시청자분들도 나래를 진득하게 관찰하기 시작한 것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사실 그렇게 들여다보면 또 애정이 생기거든요. 나래도 나이 들어가고 자연스레 주변 상황도 바뀌고 그러면서 또 일상이 달라지잖아요. 나래가 좋은 사람 만나 결혼하길 물론 바라지만 혹 결혼 안 하고 계속 나이 들어도 보여줄 게 분명 있을 친구 같아요. 50대 넘어 갱년기를 겪으면 또 그 상황에 대해 가장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나래가 아닐까 싶거든요. 나래가 집에서 감 떨어진 거 치우는 데 그렇게 진심일 줄 누가 알았겠어요(웃음).
박나래: 감 얘기하니까 어제도 치우고 왔죠.
-코미디언뿐 아니라 여성 작가에게도 예능 제작 환경이 호의적이진 않잖아요.
이 작가: 사실 이번 추석 당일(6일)에도 '나혼산' 녹화하거든요. 한파 경보가 내려진 추운 날씨에 '언니, 날씨가 추워야 하는 아이템인데, 날씨가 추워서 촬영이 아주 잘됐어요'라고 해맑게 웃는 후배 작가가 있었어요. 후배들 보면서 많이 배웠죠. 같이 웃고 서로 응원해 주는 동료들이 있어 23년의 시간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박나래가 '코미디 빅리그'에서 한 애니메이션 '검정고무신' 의 '기영이' 분장. 박나래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실패의 긍정, '나혼산' 콤비의 공통점
카르페디엠(Carpe Diem). 라틴어로 '오늘을 즐겨라'는 뜻이다. 박나래는 이 문구를 오랫동안 카톡 프로필에 걸어뒀다. 사연은 이랬다. 박나래는 고1 때 가족과 떨어져 안양에서 살았다. 예고를 다니기 위해서였다. 추석 즈음, 그는 아버지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우리 딸 보고 싶다"는 안부였다. 평소 워낙 무뚝뚝했던 아버지라 딸(박나래)은 약주를 드시고 한 전화인 줄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별걱정 없이 내려간 집, 그의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지병을 앓던 그의 아버지가 숨을 거둔 것이다. 17세 때 박나래는 삶과 죽음이 가깝게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 이후, 박나래의 머리에선 '내일 죽는다면 오늘 뭐 해야 할까'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매 순간 나답게 살려고" 그가 노력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학에 입학한 뒤 그는 인형극 아르바이트, 단편 영화 엑스트라 등을 닥치는 대로 했다. 100번 넘게 떨어졌지만 오디션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 시절에 딛고 일어날 수 있는 바닥을 다진 것 같아요." 박나래는 실패를 이렇게 '긍정'했다. 박나래는 에세이 '웰컴 나래바! 놀아라, 내일이 없는 것처럼'(2017)에 '야채볶음밥이 먹고 싶어 라면 플레이크를 불려 먹어도 그게 힘들다는 생각을 못 했다'고 썼다. 긍정은 이 작가의 힘이기도 했다. "다음에도 일찍 나와 또 밤 11시, 12시까지 녹화하겠죠. 분명 피곤하겠지만 다 같이 깔깔 웃을 테고요. 그래서 이 일을 20년 넘게 버텼다기보다 그냥 뚜벅뚜벅 걸어왔던 것 같아요."
지난 6월 '나 혼자 산다'는 600회를 맞았다. 박나래(앞줄 왼쪽 첫 번째) 등이 기념 촬영을 했다. MBC 제공
"밥 챙겨주는 보시" "서로 어색하게 만났지만"
-'환상의 콤비' 시그니처 질문입니다. 연예계에 유명한 말 있잖아요. 제작진은 '분칠 한 것들(연예인) 믿으면 안 돼'라고 하고, 출연자들은 '어우 진짜 방송사 놈들'이라며 이를 갈고. 서로 어떻게 관계가 깊어졌나요?
이 작가: 코미디언으로서 나래에 대한 믿음은 '나혼산'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있었어요. 다른 방송에서 잘해왔고 '뭐, 잘하겠지' 싶었으니까요. 다만, 제가 사람을 쉬 믿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불신까진 아니고 의심을 하고 지켜보면 결국 그 사람의 속내가 나오기 마련이고요. 관찰 예능은 특성상 출연자의 진심이 어느 순간 뚫고 나올 수밖에 없어요. 만약 그 진심이 상대에 전달되지 못하면 생명력이 확 짧아지는 거고요. 관찰 예능을 통해 10년 동안 나래를 지켜보면서 '참 진심이구나'를 느낀 순간들이 많았어요.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서 '기세녀'로 뛰어다닐 때나 '쌩얼'로 주위 신경 쓰지 않고 땀 뻘뻘 흘리며 일할 때에요. "나래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걸 보며 많이 배우려 한다"고 지난해 시상식에서 ('올해의 작가상'을 받은 뒤) 말한 적이 있는데 정말 주변을 잘 챙겨요. 특히 혼자 사는 친구들한테 많이 퍼주죠. 지난겨울, 나래가 집에서 (정)재형 오빠랑 김장했잖아요? 그 김치, 제작진도 한 통 받았어요. 일 바빠 제때 밥 못 챙겨 먹고 사무실에서 컵라면 먹을 때 그 김치에 먹고 그랬죠. 불교 믿는 제 할머니께서 '배고픈 사람한테 밥 챙겨주는 게 가장 큰 보시'라고 늘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렇게 사는 저보다 어린 친구(박나래)를 처음 본 거죠.
박나래: 아, 그 김치 진짜 맛있었는데(웃음). 이 작가님과는 사실 '나혼산'에서 PD, 작가 다 바뀌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서로 어색하게 만났어요. 우리끼리 '방송국 놈들' 이라고 하는 건 프로그램 자극적으로 만들려면 진짜 끝이 없거든요. 관찰 예능이고 리얼이다 보니 촬영하면서도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을 때가 있는데 이 작가님이 그걸 잘 지켜주시죠. '나혼산' 감독판 나오면 아.. 저희는 그냥 끝날 거예요.
'나 혼자 산다'에서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를 주제로 촬영하고 있는 박나래(왼쪽 첫 번째)와 한혜진(가운데) 그리고 화사. MBC 영상 캡처
-그러니 '여은파' 감독판이 더 궁금해지는데요?
(박나래는 한혜진, 화사와 함께 '여자들의 은밀한 파티'를 주제로 '나혼산' 속편을 꾸렸다. 촬영 일부는 전파를 탔고, 일부는 유튜브에 따로 공개됐다.)
박나래: 그건 진짜 안 돼요. 유료 채널로 가야 돼요(웃음).
싱싱한 방어 올라왔어요! '나래 카세'의 등장
-좀 전에 음식 나눔 얘기로 돌아가면 그래서 나래 씨 방송 중 유독 음식 만드는 에피소드가 많은가 봐요.
이 작가: 나래가 집에서 혼자 전 부치고 명절 음식 만들어 혼자 사는 지인들이나 오은영 선생님 같은 어른들께 나눠주잖아요? 그게 방송용 이벤트가 아녜요. 진짜 일상이에요. '나혼산' 나래 담당 작가가 그냥 평상시 안부처럼 나래한테 '추석에 뭐 해?'라고 카톡으로 물어봤나 봐요. 나래가 '전 부쳐야지. 사람들 불러서 같이 먹고 나눠도 주고'라고 답하고요. 그렇게 대화하다 '그럼 그냥 그걸 찍자' 이렇게 된 거죠. 평상시에 그렇게 살고 있으니(웃음).
박나래: 그렇게 같이 음식 먹는 걸 좋아해요. 고향에서 방어나 낙지 올라오면 시간 되는 사람들 번개로 모여 우리 집에서 같이 먹죠. 많이 모였을 때는 15명까지 왔던 것 같아요.
코미디언 박나래가 트로트 가수 박지현을 집으로 초대해 전을 부쳐 입에 넣어주고 있다. MBC '나 혼자 산다' 영상 캡처
-같이 먹는 데 정말 진심이군요.
박나래: 제작 환경이 그래서 더 그러는 것 같아요. 관찰 예능이다 보니 제작진이 개입을 안 하려고는 하는데, 카메라에 잡히진 않지만 촬영 때 제작진들이 좁은 방에서 모니터링을 하거든요. 고향인 목포로 내려갔을 때도 엄마가 떡이랑 과일 그리고 밥이랑 반찬이랑 차려 제작진에 주는데 괜찮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엄마가 '제작진 먼저 다 먹기 전엔 우리(엄마와 나)도 밥 안 먹겠다'고 해서 먼저 밥을 챙겼죠. 할머니도 마찬가지셨고요. '여름 나래 학교' 촬영 갔을 때도 제작진이 죄송해서 밥 괜찮다고 하면 할머니가 '그럼 나도 안 먹겠다'고 해서 같이 먹고요. 그냥 우리 집 분위기가 그래요.
전현무와 박나래, 이장우가 함께 체중 감량을 하고 화보 촬영을 하고 있다. 세 사람은 '나 혼자 산다'에서 함께 먹는 걸 즐기는 '팜유' 멤버다. 박나래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언젠까지 나혼자? 다들 눈치 싸움 중"
-그래서 나래 씨는 언제까지 나 혼자 살 건가요?
박나래: 은근히 눈치 싸움 중이거든요. '너보다는 내가 먼저 간다' 이러면서요. 전 40대 초반엔 결혼하지 않을까 했는데 아시잖아요, 그게 마음먹는 대로 안 되는 거. 현무, 기안84 오빠도 보내야 되고요. 최근에 (이)장우를 보내서 그나마 다행인 것 같긴 해요(웃음).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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