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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이번 특집 기사는 [삶] 인터뷰이들이 그동안 언급한 인생 목표, 좌우명, 삶의 의미 등을 주로 다뤘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 기사입니다. 이미 송고한 첫 번째와 두 번째 기사 목록은 이번 기사 맨 아랫부분에 있습니다.]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 배치된 북한군 북한 조선중앙TV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의 전투 영상 기록물을 2025년 8월31일 공개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삶] 인터뷰이들은 대체로 부 바다이야기 지런하고, 성취 욕구가 강하고, 타인을 돕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공직자들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분노도 적지 않았다. 올바르고 정의로운 삶에 대해서도 높은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9월 작고한 고(故) 장기표 선생은 생전에 연합뉴스와의 [삶] 인터뷰에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오히려 엉망 사이다쿨접속방법 진창인 나라가 됐다고 했다
전인범 전(前) 특전 사령관은 한국의 무능한 군인들이 술과 골프, 돈 등을 동원한 로비로 진급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군(軍) 지휘관들은 사고가 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이 생길까 봐 아예 군사훈련을 안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윤여준 전(前) 환경부 장관은 김영삼 정부 시절 이후 바다신2 다운로드 공무원들이 급속도로 정치화되는 등 공직 기강이 무너졌다고 했다. 관료들이 직무에 충실히 하고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것보다 권력에 줄을 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됐다고 했다.
아래 내용은 2022년 9월부터 시작한 [삶] 인터뷰 송고 내용 가운데 인터뷰이들이 언급한 삶의 원칙과 목표, 좌우명 등 인생 가치관을 발췌해 별도로 묶은 것이다. 릴게임몰메가
연합뉴스와 [삶] 인터뷰 중인 전인범 전(前) 특전사령관 [신현우 기자 촬영]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육군 중장)
내 좌우명은 재승부덕(才勝不德)이다. 재주가 덕을 앞서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검증완료릴게임 내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다.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은 어려운 사람을 돕고, 그들의 대변인이 되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나의 인생 목표가 됐다. 나는 중장으로 예편했지만, 계급장이 목표는 아니었다. 이런 목표를 추구하는 통로였을 뿐이다.
한국군에서는 무능한 사람이 장성(준장 이상)으로 진급하는 경우가 있다. 무능한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임무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어떤 군인은 인사와 관련해 국회의원뿐 아니라 그 보좌관한테도 연락한다. 경쟁자의 약점을 잡아서 이들에게 제보하기도 한다. 정부의 주요 인물에게도 접근하고, 언론사에 줄을 대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진급을 위해 돈을 쓰려는 사람도 있다.
군 골프장의 모습 [SNS 캡처 사진]
군대에서는 술 안 먹고, 골프 안 하면서 장성이 되는 사람이 드물다는 이야기가 있다. 군인으로서는 무능하지만, 골프 사거리를 판단하는 데는 '귀신같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한국군이 북한군과 골프대회를 하면 백전백승한다는 것이다.
군에서는 준장으로 진급하려면 속칭 '석 장(3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건 돈을 말하는 것인데 3억원인지, 3천만원인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가끔 준장 진급을 앞둔 후배 군인들이 어느 정도의 돈을 준비해야 하는지 나한테 묻는 일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매관매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군 생활 내내 그런 돈을 한 푼도 써본 적이 없다. 오히려 소위 시절에 내 봉급의 3분의 1은 부하들을 위해 사용했다.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 배치된 북한군 북한 조선중앙TV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의 전투 영상 기록물을 2025년 8월31일 공개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지휘관들이 부패하고 무능하면 그 나라의 군사력은 전반적으로 떨어진다.
각국의 군사력을 측정하는 민간 사설 단체 '글로벌 파이어 파워(GFP)는 한국의 군사력이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에 이어 5위라고 했다. 이는 과대 평가된 것으로 나는 판단한다.
한국군은 공군과 해군 등의 첨단 무기에서 북한보다 우위라고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 무기에서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낫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더욱 문제는 한국군은 군사 훈련을 제대로 안 한다는 점이다. 사고가 나면 문책당하고, 진급에 문제가 생기니 지휘관들이 훈련을 꺼린다. 훈련을 제대로 하려면 야외에서 2∼4주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물과 전기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전투할지, 춥고 더운 계절에 어떻게 살아남을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훈련기간이 5일을 넘기지 않는 듯하다. 이 중에서도 첫날은 내무반에서 자고, 이틀째와 사흘째는 밖에 있고, 4일째는 내무반으로 돌아와서 강평하는 식이 되기도 한다.
한국군은 훈련 때 무전기가 아닌 카톡으로 교신하고. 입으로 '빵빵빵' 총 쏘는 흉내를 낸다. 산불이 날까 봐 비 오는 날만 포격 훈련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예비군이 300만여명인데, 지급할 M-16 소총은 100만정 안팎에 불과하다. 병사들의 부모들은 내무반 생활과 군사훈련에도 일일이 간섭한다. 그래서 소대장은 병사 부모들과 카톡방을 만들어서 군부대 일을 설명한다.
나는 우크라이나군 대대장과 통화한 적이 있다. 그는 전투 현장에서 보니 북한 군인들이 체력도 괜찮고, 병기를 다룰 줄 알고, 전술도 능하다고 했다.
생전에 연합뉴스와 [삶] 인터뷰 중인 장기표 선생 [연합뉴스 사진]
'영원한 재야' 고(故) 장기표 선생(2024년 9월 작고)
나의 좌우명은 전화위복이다. 그것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세상의 법칙이라고 믿는다. 나는 살아오면서 실패도 많이 했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사람은 어떤 화(禍)를 입었을 때 좌절에 빠질 수 있는데, 나는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이다. 어려움은 오히려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
내 삶의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의 자아실현을 통해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런 차원에서 내가 말하는 민주 시장주의는 사회민주주의에다 자아실현과 생태주의를 보탠 것이다.
생활의 원칙으로 나는 과거부터 '골프 안 하기'와 '외제 차 안 타기'를 실천하고 있다. 재야 출신들이 해방됐다고(민주화됐다고) 해서, 또는 돈이 좀 생겼다고 해서 골프하러 다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아가신 정치인 김상현 씨가 나를 좋게 봤는데, 그분이 나에게 여러 차례 골프를 권했다. 정치를 하려면 골프를 알아야 한다면서 골프에 입문하면 도구 일체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정치인들이 앉으면 골프 이야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산공고 3학년 시절의 장기표(오른쪽) 바닷가에서 친구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장기표 [본인 제공]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이 워낙 가난했기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집은 봄에 장리쌀을 먹어야 했다. 쌀 한 가마를 빌리면 두 가마를 갚는 식이었다. 이러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형들은 산에서 나무를 해야 했는데, 발뒤꿈치가 갈라졌는데도 약이 없었기에 뜨거운 촛농을 부어 소독하곤 했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서 처음에는 판사가 될 생각이었다. 판검사 등 권력층 몇십 명으로 모임을 만들어서 세상을 바꾸자는 계획이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보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의 삶을 살았다.
결과적으로 내 삶은 실패다. 내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이 됐다.
연합뉴스와 [삶] 인터뷰 중인 노동운동가 하종강 [연합뉴스 사진]
노동운동가 하종강(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나는 자녀들에게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사는 삶은 천박하다고 말한다. 집에서 아이들이 햄스터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어미가 새끼를 눈물겹게 사랑하는 것을 봤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이렇게 작은 짐승도 할 수 있다. 인간이 이런 짐승과 구별되는 것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뭔가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농공단지 비닐하우스 같은 공장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을 진정으로 존경한다. 이들에게 왜 노조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남 앞에서 잘난 척하는 것 말고, 뭔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환경미화원들 앞에서 노조에 대해 강의하는 하종강 [본인 제공]
내가 40여년간 노동 상담이라는 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고전적 휴머니즘을 충족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붙잡고 견디었다. 능동적으로 개척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더니 견딜 수 있었던 것뿐이다.
나는 노동운동가라기보다는 노동운동 상담 활동가라는 표현이 맞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 한 잔 떠다 주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운동은 우리 사회에 유익하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은 살벌한 권리다. 노동자들이 파업해서 기업과 사회에 손실을 끼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자본주의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운동을 이기적 이익을 위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비도덕적 운동처럼 취급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정서가 유독 심하다.
연합뉴스와 [삶] 인터뷰 중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연합뉴스 사진]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나의 좌우명으로 거창한 것은 없다. 그냥 그때그때 최선을 다할 뿐이다. 또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한다. 일 자체뿐 아니라 그 방법도 부끄러우면 안 된다. 항상 원칙을 갖고 정도로 가자는 생각이다.
공직자 시절에 힘들어도 항상 그렇게 일을 했다. 나중에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결과에서도 좋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직기강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고도로 세련된 지도자가 아니면 공직사회의 자발성을 끌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기강이 무너졌다.
국정은 관료들의 힘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관료 사회를 효율적으로 지휘하지 않으면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게 없다. 산업화 시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수직적으로 관료 사회를 통제했다.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관료들에게 함께 나서자고 했고, 이것이 동기부여가 됐다. 그 결과, 관료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밤낮으로 일했다.
산업화 시기를 지나 민주화 시기가 왔으면 거기에 맞는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관료들이 급속히 정치화됐다. 김 대통령이 오랫동안 보스 생활을 했기에 주변 참모나 가신들이 많았고, 이들이 청와대에 들어와 관료 사회를 지휘했다. 이러다 보니 관료 사회의 고위 공무원들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이 정치화됐다.
관료들이 정치화됐다는 것은 직무를 충실히 하고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것보다 줄을 대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됐다는 의미다. 업무 능력은 없는데도 연줄을 댄 사람이 승진하는 공무원들을 나는 직접 봤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경제장관회의 주재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
1997년 말 외환위기 전에 김영삼 대통령의 공보수석에서 물러나 환경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한 국무회의에서 경제 전문성을 가진 비경제부처 장관이 경제에 대해 염려하는 발언을 했다. 그랬더니 당시 경제부총리가 언성을 높이면서 면박을 줬다. 펀더멘털(경제 기초)이 좋은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다음 국무회의 때 또 다른 부처 장관이 비슷한 지적을 했더니 역시 경제부총리가 화를 냈다. 나는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봤다. 경제부총리가 대통령한테 보고를 제대로 안 하면 경제수석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경제수석은 경제부처로 다시 돌아갈 사람이다 보니 적당히 동조해준다.
그래서 대통령은 경제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한다. 물가, 환율, 경상수지, 무역수지가 무엇인지는 이해해야 한다. 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알았다면 외환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공보수석 시절 나는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 언론인 등을 만나 경제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경제수석에게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대통령한테 왜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고하느냐"고 두차례 따진 적이 있다. 그 경제수석은 민간 경제연구소가 재벌사 부설이어서 정부로부터 뭔가 얻어내기 위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서 나한테 면박을 줬다.
나는 정부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국정의 기본은 경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민생이 좋아지려면 경제가 튼튼해야 한다. 안보도 경제력 없이는 안된다. 경제력이 약하면 군사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낙후하면 외교력이 생기지 않는다.
<이번 인생 가치관 관련 특집기사 송고 리스트>
[삶] "난 반 미친 사람처럼 노력했다"…박세리(2025년 11월27일 송고)
[삶] "돈 많이 벌어 냄비에 삶아먹어보는게 삶의 목표였었다"(205년 11월30일 송고)
keunyoung@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기자 admin@slotnara.info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 배치된 북한군 북한 조선중앙TV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의 전투 영상 기록물을 2025년 8월31일 공개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삶] 인터뷰이들은 대체로 부 바다이야기 지런하고, 성취 욕구가 강하고, 타인을 돕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공직자들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분노도 적지 않았다. 올바르고 정의로운 삶에 대해서도 높은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9월 작고한 고(故) 장기표 선생은 생전에 연합뉴스와의 [삶] 인터뷰에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오히려 엉망 사이다쿨접속방법 진창인 나라가 됐다고 했다
전인범 전(前) 특전 사령관은 한국의 무능한 군인들이 술과 골프, 돈 등을 동원한 로비로 진급하는 일이 있다고 했다. 군(軍) 지휘관들은 사고가 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이 생길까 봐 아예 군사훈련을 안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윤여준 전(前) 환경부 장관은 김영삼 정부 시절 이후 바다신2 다운로드 공무원들이 급속도로 정치화되는 등 공직 기강이 무너졌다고 했다. 관료들이 직무에 충실히 하고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것보다 권력에 줄을 대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됐다고 했다.
아래 내용은 2022년 9월부터 시작한 [삶] 인터뷰 송고 내용 가운데 인터뷰이들이 언급한 삶의 원칙과 목표, 좌우명 등 인생 가치관을 발췌해 별도로 묶은 것이다. 릴게임몰메가
연합뉴스와 [삶] 인터뷰 중인 전인범 전(前) 특전사령관 [신현우 기자 촬영]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육군 중장)
내 좌우명은 재승부덕(才勝不德)이다. 재주가 덕을 앞서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이는 검증완료릴게임 내가 생각해낸 것이 아니다. 우리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다.
나에게 의미 있는 삶은 어려운 사람을 돕고, 그들의 대변인이 되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게 나의 인생 목표가 됐다. 나는 중장으로 예편했지만, 계급장이 목표는 아니었다. 이런 목표를 추구하는 통로였을 뿐이다.
한국군에서는 무능한 사람이 장성(준장 이상)으로 진급하는 경우가 있다. 무능한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임무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어떤 군인은 인사와 관련해 국회의원뿐 아니라 그 보좌관한테도 연락한다. 경쟁자의 약점을 잡아서 이들에게 제보하기도 한다. 정부의 주요 인물에게도 접근하고, 언론사에 줄을 대려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진급을 위해 돈을 쓰려는 사람도 있다.
군 골프장의 모습 [SNS 캡처 사진]
군대에서는 술 안 먹고, 골프 안 하면서 장성이 되는 사람이 드물다는 이야기가 있다. 군인으로서는 무능하지만, 골프 사거리를 판단하는 데는 '귀신같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 내가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한국군이 북한군과 골프대회를 하면 백전백승한다는 것이다.
군에서는 준장으로 진급하려면 속칭 '석 장(3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건 돈을 말하는 것인데 3억원인지, 3천만원인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가끔 준장 진급을 앞둔 후배 군인들이 어느 정도의 돈을 준비해야 하는지 나한테 묻는 일이 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으로 큰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매관매직이기 때문이다. 나는 군 생활 내내 그런 돈을 한 푼도 써본 적이 없다. 오히려 소위 시절에 내 봉급의 3분의 1은 부하들을 위해 사용했다.
러시아 쿠르스크 전선에 배치된 북한군 북한 조선중앙TV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북한군의 전투 영상 기록물을 2025년 8월31일 공개했다. [조선중앙TV 캡처]
지휘관들이 부패하고 무능하면 그 나라의 군사력은 전반적으로 떨어진다.
각국의 군사력을 측정하는 민간 사설 단체 '글로벌 파이어 파워(GFP)는 한국의 군사력이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에 이어 5위라고 했다. 이는 과대 평가된 것으로 나는 판단한다.
한국군은 공군과 해군 등의 첨단 무기에서 북한보다 우위라고 하지만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 무기에서 한국군이 북한군보다 낫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더욱 문제는 한국군은 군사 훈련을 제대로 안 한다는 점이다. 사고가 나면 문책당하고, 진급에 문제가 생기니 지휘관들이 훈련을 꺼린다. 훈련을 제대로 하려면 야외에서 2∼4주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물과 전기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전투할지, 춥고 더운 계절에 어떻게 살아남을지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훈련기간이 5일을 넘기지 않는 듯하다. 이 중에서도 첫날은 내무반에서 자고, 이틀째와 사흘째는 밖에 있고, 4일째는 내무반으로 돌아와서 강평하는 식이 되기도 한다.
한국군은 훈련 때 무전기가 아닌 카톡으로 교신하고. 입으로 '빵빵빵' 총 쏘는 흉내를 낸다. 산불이 날까 봐 비 오는 날만 포격 훈련을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예비군이 300만여명인데, 지급할 M-16 소총은 100만정 안팎에 불과하다. 병사들의 부모들은 내무반 생활과 군사훈련에도 일일이 간섭한다. 그래서 소대장은 병사 부모들과 카톡방을 만들어서 군부대 일을 설명한다.
나는 우크라이나군 대대장과 통화한 적이 있다. 그는 전투 현장에서 보니 북한 군인들이 체력도 괜찮고, 병기를 다룰 줄 알고, 전술도 능하다고 했다.
생전에 연합뉴스와 [삶] 인터뷰 중인 장기표 선생 [연합뉴스 사진]
'영원한 재야' 고(故) 장기표 선생(2024년 9월 작고)
나의 좌우명은 전화위복이다. 그것은 위로의 말이 아니라 세상의 법칙이라고 믿는다. 나는 살아오면서 실패도 많이 했지만 낙담하지 않았다. 사람은 어떤 화(禍)를 입었을 때 좌절에 빠질 수 있는데, 나는 그렇게 되지 않는 사람이다. 어려움은 오히려 나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
내 삶의 목표는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사람들의 자아실현을 통해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런 차원에서 내가 말하는 민주 시장주의는 사회민주주의에다 자아실현과 생태주의를 보탠 것이다.
생활의 원칙으로 나는 과거부터 '골프 안 하기'와 '외제 차 안 타기'를 실천하고 있다. 재야 출신들이 해방됐다고(민주화됐다고) 해서, 또는 돈이 좀 생겼다고 해서 골프하러 다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돌아가신 정치인 김상현 씨가 나를 좋게 봤는데, 그분이 나에게 여러 차례 골프를 권했다. 정치를 하려면 골프를 알아야 한다면서 골프에 입문하면 도구 일체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정치인들이 앉으면 골프 이야기를 하던 시절이었다.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산공고 3학년 시절의 장기표(오른쪽) 바닷가에서 친구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는 장기표 [본인 제공]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이 워낙 가난했기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우리 집은 봄에 장리쌀을 먹어야 했다. 쌀 한 가마를 빌리면 두 가마를 갚는 식이었다. 이러니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형들은 산에서 나무를 해야 했는데, 발뒤꿈치가 갈라졌는데도 약이 없었기에 뜨거운 촛농을 부어 소독하곤 했다.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서 처음에는 판사가 될 생각이었다. 판검사 등 권력층 몇십 명으로 모임을 만들어서 세상을 바꾸자는 계획이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보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의 삶을 살았다.
결과적으로 내 삶은 실패다. 내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이 됐다.
연합뉴스와 [삶] 인터뷰 중인 노동운동가 하종강 [연합뉴스 사진]
노동운동가 하종강(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나는 자녀들에게 자기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사는 삶은 천박하다고 말한다. 집에서 아이들이 햄스터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어미가 새끼를 눈물겹게 사랑하는 것을 봤다.
우리 아이들에게 "가족을 사랑하는 것은 이렇게 작은 짐승도 할 수 있다. 인간이 이런 짐승과 구별되는 것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뭔가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농공단지 비닐하우스 같은 공장에서 만나는 노동자들을 진정으로 존경한다. 이들에게 왜 노조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남 앞에서 잘난 척하는 것 말고, 뭔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환경미화원들 앞에서 노조에 대해 강의하는 하종강 [본인 제공]
내가 40여년간 노동 상담이라는 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고전적 휴머니즘을 충족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붙잡고 견디었다. 능동적으로 개척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더니 견딜 수 있었던 것뿐이다.
나는 노동운동가라기보다는 노동운동 상담 활동가라는 표현이 맞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 한 잔 떠다 주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운동은 우리 사회에 유익하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은 살벌한 권리다. 노동자들이 파업해서 기업과 사회에 손실을 끼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자본주의 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운동을 이기적 이익을 위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비도덕적 운동처럼 취급한다. 한국에서는 이런 정서가 유독 심하다.
연합뉴스와 [삶] 인터뷰 중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연합뉴스 사진]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나의 좌우명으로 거창한 것은 없다. 그냥 그때그때 최선을 다할 뿐이다. 또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한다. 일 자체뿐 아니라 그 방법도 부끄러우면 안 된다. 항상 원칙을 갖고 정도로 가자는 생각이다.
공직자 시절에 힘들어도 항상 그렇게 일을 했다. 나중에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결과에서도 좋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공직기강이 심각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고도로 세련된 지도자가 아니면 공직사회의 자발성을 끌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기강이 무너졌다.
국정은 관료들의 힘으로 추진되는 것이다. 관료 사회를 효율적으로 지휘하지 않으면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게 없다. 산업화 시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수직적으로 관료 사회를 통제했다. 조국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관료들에게 함께 나서자고 했고, 이것이 동기부여가 됐다. 그 결과, 관료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밤낮으로 일했다.
산업화 시기를 지나 민주화 시기가 왔으면 거기에 맞는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관료들이 급속히 정치화됐다. 김 대통령이 오랫동안 보스 생활을 했기에 주변 참모나 가신들이 많았고, 이들이 청와대에 들어와 관료 사회를 지휘했다. 이러다 보니 관료 사회의 고위 공무원들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이 정치화됐다.
관료들이 정치화됐다는 것은 직무를 충실히 하고 우수한 성과를 내는 것보다 줄을 대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됐다는 의미다. 업무 능력은 없는데도 연줄을 댄 사람이 승진하는 공무원들을 나는 직접 봤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경제장관회의 주재하는 모습 [연합뉴스 사진]
1997년 말 외환위기 전에 김영삼 대통령의 공보수석에서 물러나 환경부 장관으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한 국무회의에서 경제 전문성을 가진 비경제부처 장관이 경제에 대해 염려하는 발언을 했다. 그랬더니 당시 경제부총리가 언성을 높이면서 면박을 줬다. 펀더멘털(경제 기초)이 좋은데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다음 국무회의 때 또 다른 부처 장관이 비슷한 지적을 했더니 역시 경제부총리가 화를 냈다. 나는 그런 장면을 여러 번 봤다. 경제부총리가 대통령한테 보고를 제대로 안 하면 경제수석이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경제수석은 경제부처로 다시 돌아갈 사람이다 보니 적당히 동조해준다.
그래서 대통령은 경제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한다. 물가, 환율, 경상수지, 무역수지가 무엇인지는 이해해야 한다. 나는 김영삼 대통령이 경제에 대해 알았다면 외환위기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공보수석 시절 나는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 언론인 등을 만나 경제에 대해 걱정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경제수석에게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 대통령한테 왜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고하느냐"고 두차례 따진 적이 있다. 그 경제수석은 민간 경제연구소가 재벌사 부설이어서 정부로부터 뭔가 얻어내기 위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면서 나한테 면박을 줬다.
나는 정부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국정의 기본은 경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민생이 좋아지려면 경제가 튼튼해야 한다. 안보도 경제력 없이는 안된다. 경제력이 약하면 군사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낙후하면 외교력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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