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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버스·택시 등 사람이 이동하거나 짐을 옮기는 데 쓰는 수단을 교통수단(交通手段)이라 하죠. 서울시의 대중교통은 930만 서울시민과 서울로 출퇴근하는 수도권 시민의 발입니다. 지상에는 버스·택시, 지하에는 지하철이 서울 전역을 촘촘히 연결하죠. 오늘날 서울이 이러한 대중교통 체계를 갖추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에 있는 서울기록원에서 진행 중인 전시 '어느 도시의 탑승록'을 통해 알아봅시다.
서울기록원은 시민의 삶과 서울의 변화를 담은 기록들을 모으고 보존하기 위해 2019년 개원했어요. 시민 누구나 기록을 통해 서울을 만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로 전시를 황금성게임랜드 개최합니다. '어느 도시의 탑승록'은 서울시가 대중교통 체계의 기초를 세우며 성장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기를 문서·사진 등 120여 건의 서울기록원 소장 기록물로 살펴보는 전시예요. 최혜주 학예연구사는 "대중교통은 이동 수단이지만 서울의 변화와 당시 사람들의 삶도 잘 보여줍니다. 서울기록원이 보존 중인 공공기록물을 통해 교통 정책이 어떻게 바다이야기비밀코드 변화했고,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했는지 알 수 있죠"라고 설명했어요.
'어느 도시의 탑승록'은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교통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기록을 중심으로 서울시가 '겹겹이 쌓인 도시'로 성장한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다.
릴게임다운로드
한국전쟁이 종전한 뒤인 1960년대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화가 가속화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농촌으로부터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본격화했죠. 해방 직후 100만 명 수준이던 서울시의 인구는 1960년에는 약 244만 명, 1970년에는 약 553만 명으로 급증했고 이로 인한 교통혼잡은 일상이었어요. 이에 야마토무료게임 서울시는 주택 보급과 더불어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한 도로망과 대중교통의 확충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죠. 버스와 택시의 증차 및 노선 재조정, 전차의 철거와 지하철의 건설이 여기에 해당하죠.
먼저 당시 지상을 달리던 대중교통수단 중 버스에 대해 알아봅시다. 1960년대 서울시 버스의 중요한 변화는 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시영버스의 등장입니다. 릴게임황금성 교통수단으로서 버스는 일제강점기 때 처음 서울에 도입됐어요. 1928년 경성부에서 운영했던 경성부영버스가 서울 최초의 시내버스죠. 하지만 전차와 노선이 겹치는데 요금은 더 높아서 전차의 인기에 미치지 못했어요. 서울에 버스가 교통수단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한 것은 1949년 교통부가 민간 버스회사에 정식 사업면허를 부여하면서부터입니다.
1966년 서울시가 시정 개선을 위해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수집했던 '아이디어 뱅크' 기록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종전 후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서울시는 늘어나는 교통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여객자동차운송사업조합'을 발족시켜 버스 운행을 재개하고자 했지만, 유류 부족과 유류 가격 급등으로 버스 승차난이 지속됐죠. 1961년 시내버스 대수는 700여 대에 불과했지만, 이용 수요는 100만 명 수준에 달했어요.
게다가 1960~1970년대 서울시의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신림동·개화동·상계동 등 당시 시 외곽에 해당했던 지역들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버스 노선 신설과 버스 증차에도 승차난은 계속됐죠. 이에 서울시는 민간버스 사업자가 메우기 힘든 교통 노선 공백을 메우고 시 외곽 지역 주민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1967년 시영버스 운행을 시작했어요. 시영버스는 전재민(전쟁으로 재난을 입은 사람)·수재민·화재민·철거민 등 약 6만 명이 정착해 있던 외곽 지역과 도심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죠.
1966년 서울시 버스정류소 차양대 모습. 시민들의 질서 있는 버스 승차를 유도하기 위해 설치됐다. ⓒ서울기록원
전시실에서는 1966년 서울시가 시영버스 창업을 앞두고 낸 종업원 모집 공고가 있어요. 운전원과 정비공 등 모집 직종의 자격조건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죠. 다만 여성 지원자의 경우 '미혼' '용모단정'과 같은 조건이 붙어있어 지금과는 달랐던 당시 성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엿볼 수 있어요. 또 시영버스 중 일부는 내부를 개조해 변두리에 살던 영세민들이 채소와 농작물을 갖고 승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운전원과 안내원 부족, 장거리 노선에 열악한 비포장도로, 운영 적자 등의 문제가 지속됐고, 시영버스는 1974년 9월 전량 민간에 매각되며 운행이 종료됐어요. 계속되는 시내버스 승차난을 완화하기 위해 민간 버스회사에서 운행하는 버스 노선과 대수를 늘린 끝에 서울시내를 누비는 버스는 1955년 557대에서 1985년대에는 8296대까지 증가하며 시민의 발이 되었죠.
1980년대 서울시에서 버스 탑승용 토큰의 유통 과정과 판매소의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실태를 조사한 문서. ⓒ서울기록원
버스 요금의 지불수단도 시대에 따라 변했는데요. 서울시의 경우 현금을 기본으로 1954~2004년 종이로 된 여러 장의 버스 승차권을 한 묶음으로 파는 회수권, 1977년~1999년 버스 요금을 낼 때 돈을 대신하여 내는 동전 모양의 주조물인 토큰을 사용했어요. 1996년에는 전국 최초로 전자화폐의 일종인 버스카드가 등장했죠.
1960~1980년대 전차와 버스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도심 이동 수요의 틈을 메운 지상 교통수단은 택시예요. 택시는 1912년 서울에 처음으로 등장했어요. 서울시는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육성하고자 1950년 '서울시내택시면허제'를 고시했죠.
'어느 도시의 탑승록'에서는 시민들이 서울시의 교통 정책에 참여했던 기록도 만날 수 있다.
목적지가 비슷한 승객들이 함께 이동하는 합승택시는 1956년 본격적으로 도입된 제도예요. 택시 한 대를 여러 승객이 함께 타고 운임을 나눠 내는 방식으로, 시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버스·전차와 함께 교통 수요를 분담하기 위한 조치였죠. 그 결과 1980년대 택시는 서울시 하루 교통 인구 1400만여 명의 9%인 260만여 명을 담당하는 중요 교통수단으로 성장했어요. 택시 합승제도는 1982년 교통부와 서울시가 택시 서비스 향상을 위해 전면 금지하기 전까지 지속됐습니다.
전시실 내에는 1961년 서울시 내무국 시민과에서 작성한 '시내버스 및 합승택시 노선(경유지) 일부 변경 공고'가 있어요. 동대문 오관수다리 복개도로 개통에 따라 시내버스와 합승택시의 노선이 변경되었다는 내용의 공고문인데요. 합승택시 역시 버스와 마찬가지로 노선과 경유지가 서울시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죠.
1992년 등장한 모범택시 운전기사 복장 규정 기록물. ⓒ서울기록원
"버스와 택시 등 지상의 교통수단만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자, 서울시는 교통 체계를 지상에서 지하로 확대했어요. 1974년 개통된 지하철 1호선은 입체도시 서울의 시작을 알렸죠."(최)
서울 시내 곳곳이 지하철과 버스로 연결되기 이전 서울 시민들이 많이 이용했던 교통수단은 노면전차였어요. 1899년 대한제국 시기에 등장한 노면전차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광복 이후에도 서울시가 전차 사업을 인수해 운영했어요. 1950년대 중후반까지 노면전차는 약 40km의 노선에서 190여 대의 전차로 하루 약 30만여 명을 수송하는 서울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어요. 하지만 1960년대 버스와 택시의 시민 수송 비중이 높아지자 노면전차 운영은 만성 적자 상태에 빠졌고, 시설 노후화까지 겹쳐 애물단지로 전락했죠. 결국 노면전차는 70년간의 운행 끝에 1968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어느 도시의 탑승록'에서는 서울기록원이 소장한 120여 건의 기록물과 지하철 건설에 참여했던 설계자의 기증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노면전차가 사라진 후 서울시는 지하철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1971년 4월 기공한 지하철 1호선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해 서울역-종로-청량리를 잇는 구간이 개통했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건설공사는 대로변의 교통혼잡, 땅을 파내려 가는 굴착공사로 인한 소음 민원 및 주변 건물 피해, 정차장 부지 관련 보상, 문화재위원회와의 마찰 등 어려움의 연속이었어요.
전시실에서는 1970년대 지하철 1호선 건설 사업에 설계자로 참여한 김영수씨가 기증한 지하철 1호선 공사 현장 촬영 사진 앨범과 당시 작성한 업무 수첩을 만날 수 있어요. 건설 관계자로서 꾸준히 기록한 그의 자료에는 지하철 건설 과정과 현장의 분위기가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공사로 인한 교통혼잡과 소음에 시달리던 시민에게 '시민의 발입니다. 조금만 참아주십시오'라고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던 순간, 크리스마스 당시 공사를 쉬었는데 공사 구간 위로 버스 한 대가 진입해 사고가 났던 아찔한 기억 등이 김영수씨의 기록을 통해 나타나죠.
서울기록원 보존서비스과 이세진 과장은 "서울기록원은 서울시의 중요한 기록을 보존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공공기록물을 주로 보존하지만, 공공기록물로 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시민의 기록에서 포착되는 경우도 있죠. 김영수씨의 수첩처럼요. 이렇게 서울시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공공성이 인정되면 시민의 기록도 수집하죠"라고 설명했어요.
길이가 18m에 이르는 지하철 1호선 평면도. 1970년대 서울이 그대로 담겨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길이가 18m에 이르는 지하철 1호선 평면도 역시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중요한 자료인데요. 이 평면도에는 지하철이 지나가는 구간의 지역 정보, 도로의 상태, 주변 환경까지 1970년대 서울이 그대로 담겨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어요. "버스·택시 운영 확대와 지하철의 도입으로 서울은 하나의 생활권이 됐어요. 또한 서울의 중심지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곳이 생겼죠. 즉, 도심이 하나인 방사형 도시에서 다핵도시가 된 겁니다. 대중교통이 중요한 역할을 했죠."(최)
이렇게 노면전차의 퇴장과 시내버스 체계 변화, 택시 사업의 확장, 지하철의 등장 등 서울의 대중교통 변화 양상을 1960~1980년대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이러한 변화 과정 속에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함께했어요. 전시실에는 지하철 역명 변경에 관한 청원, 교통난 완화 등 여러 시정 개선을 위해 1960년대 시청 안에 설치했던 '아이디어 뱅크' 관련 사진 등 시민이 새로운 교통수단 도입 및 발전에 참여한 기록들도 남아있죠. 전차가 오가던 거리, 버스와 자동차로 가득한 도심, 그 아래를 달리는 지하철까지. 지상과 지하로 '겹겹이 쌓인 도시' 서울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었네요.
■ 사진으로 보는 서울시 대중교통
「 1960년대는 서울시가 대중교통 관련 정책을 주도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시기예요. 또 1970년대에는 지하철이 등장했죠. 당시 서울시의 버스·택시·지하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사진으로 만나봅시다.
ⓒ서울기록원
1. 1967년 3월 중에 선보일 시영버스의 차체검사를 마친 모습. 민간버스 사업자가 메우기 힘든 교통 노선 공백을 메우고자 1967년 운행을 시작한 시영버스는 1974년 9월 민간에 매각되며 운행이 종료됐어요.
ⓒ서울기록원
2. 1963년 8월 촬영된 택시 안 미터기 부착 모습. 서울에 택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2년이지만, 택시미터기제는 1963년 도입됐어요. 미터기는 운행한 거리만큼 택시 요금을 책정해주는 기계죠. 초기에는 미터기 고장이나 미부착으로 인한 시민의 불편이 발생해 서울시가 단속에 나서기도 했어요.
ⓒ서울기록원
3. 지하철 1호선은 대중교통량이 가장 많고 서울 동서 기본 축을 이루는 서울역-종로-청량리를 잇는 구간에 1974년 개통했어요. 사진은 당시 개통을 앞둔 지하철 1호선 운행을 위해 1974년 3월 28일 부산항에 들어온 전동차.
」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서울기록원 기자 admin@no1reelsite.com
서울기록원은 시민의 삶과 서울의 변화를 담은 기록들을 모으고 보존하기 위해 2019년 개원했어요. 시민 누구나 기록을 통해 서울을 만날 수 있도록 다양한 주제로 전시를 황금성게임랜드 개최합니다. '어느 도시의 탑승록'은 서울시가 대중교통 체계의 기초를 세우며 성장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기를 문서·사진 등 120여 건의 서울기록원 소장 기록물로 살펴보는 전시예요. 최혜주 학예연구사는 "대중교통은 이동 수단이지만 서울의 변화와 당시 사람들의 삶도 잘 보여줍니다. 서울기록원이 보존 중인 공공기록물을 통해 교통 정책이 어떻게 바다이야기비밀코드 변화했고, 어떤 과정을 통해 발전했는지 알 수 있죠"라고 설명했어요.
'어느 도시의 탑승록'은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교통 정책을 펼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기록을 중심으로 서울시가 '겹겹이 쌓인 도시'로 성장한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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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종전한 뒤인 1960년대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도시화가 가속화했습니다. 1970년대에는 농촌으로부터 도시로의 인구 유입이 본격화했죠. 해방 직후 100만 명 수준이던 서울시의 인구는 1960년에는 약 244만 명, 1970년에는 약 553만 명으로 급증했고 이로 인한 교통혼잡은 일상이었어요. 이에 야마토무료게임 서울시는 주택 보급과 더불어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한 도로망과 대중교통의 확충을 중요한 과제로 삼았죠. 버스와 택시의 증차 및 노선 재조정, 전차의 철거와 지하철의 건설이 여기에 해당하죠.
먼저 당시 지상을 달리던 대중교통수단 중 버스에 대해 알아봅시다. 1960년대 서울시 버스의 중요한 변화는 시에서 직접 운영하는 시영버스의 등장입니다. 릴게임황금성 교통수단으로서 버스는 일제강점기 때 처음 서울에 도입됐어요. 1928년 경성부에서 운영했던 경성부영버스가 서울 최초의 시내버스죠. 하지만 전차와 노선이 겹치는데 요금은 더 높아서 전차의 인기에 미치지 못했어요. 서울에 버스가 교통수단으로 본격적으로 활약한 것은 1949년 교통부가 민간 버스회사에 정식 사업면허를 부여하면서부터입니다.
1966년 서울시가 시정 개선을 위해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수집했던 '아이디어 뱅크' 기록 사진. ⓒ서울역사박물관
종전 후 서울로 인구가 몰려들면서 서울시는 늘어나는 교통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서울특별시 여객자동차운송사업조합'을 발족시켜 버스 운행을 재개하고자 했지만, 유류 부족과 유류 가격 급등으로 버스 승차난이 지속됐죠. 1961년 시내버스 대수는 700여 대에 불과했지만, 이용 수요는 100만 명 수준에 달했어요.
게다가 1960~1970년대 서울시의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신림동·개화동·상계동 등 당시 시 외곽에 해당했던 지역들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버스 노선 신설과 버스 증차에도 승차난은 계속됐죠. 이에 서울시는 민간버스 사업자가 메우기 힘든 교통 노선 공백을 메우고 시 외곽 지역 주민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1967년 시영버스 운행을 시작했어요. 시영버스는 전재민(전쟁으로 재난을 입은 사람)·수재민·화재민·철거민 등 약 6만 명이 정착해 있던 외곽 지역과 도심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죠.
1966년 서울시 버스정류소 차양대 모습. 시민들의 질서 있는 버스 승차를 유도하기 위해 설치됐다. ⓒ서울기록원
전시실에서는 1966년 서울시가 시영버스 창업을 앞두고 낸 종업원 모집 공고가 있어요. 운전원과 정비공 등 모집 직종의 자격조건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죠. 다만 여성 지원자의 경우 '미혼' '용모단정'과 같은 조건이 붙어있어 지금과는 달랐던 당시 성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엿볼 수 있어요. 또 시영버스 중 일부는 내부를 개조해 변두리에 살던 영세민들이 채소와 농작물을 갖고 승차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운전원과 안내원 부족, 장거리 노선에 열악한 비포장도로, 운영 적자 등의 문제가 지속됐고, 시영버스는 1974년 9월 전량 민간에 매각되며 운행이 종료됐어요. 계속되는 시내버스 승차난을 완화하기 위해 민간 버스회사에서 운행하는 버스 노선과 대수를 늘린 끝에 서울시내를 누비는 버스는 1955년 557대에서 1985년대에는 8296대까지 증가하며 시민의 발이 되었죠.
1980년대 서울시에서 버스 탑승용 토큰의 유통 과정과 판매소의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실태를 조사한 문서. ⓒ서울기록원
버스 요금의 지불수단도 시대에 따라 변했는데요. 서울시의 경우 현금을 기본으로 1954~2004년 종이로 된 여러 장의 버스 승차권을 한 묶음으로 파는 회수권, 1977년~1999년 버스 요금을 낼 때 돈을 대신하여 내는 동전 모양의 주조물인 토큰을 사용했어요. 1996년에는 전국 최초로 전자화폐의 일종인 버스카드가 등장했죠.
1960~1980년대 전차와 버스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도심 이동 수요의 틈을 메운 지상 교통수단은 택시예요. 택시는 1912년 서울에 처음으로 등장했어요. 서울시는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육성하고자 1950년 '서울시내택시면허제'를 고시했죠.
'어느 도시의 탑승록'에서는 시민들이 서울시의 교통 정책에 참여했던 기록도 만날 수 있다.
목적지가 비슷한 승객들이 함께 이동하는 합승택시는 1956년 본격적으로 도입된 제도예요. 택시 한 대를 여러 승객이 함께 타고 운임을 나눠 내는 방식으로, 시민들의 부담을 줄이고 버스·전차와 함께 교통 수요를 분담하기 위한 조치였죠. 그 결과 1980년대 택시는 서울시 하루 교통 인구 1400만여 명의 9%인 260만여 명을 담당하는 중요 교통수단으로 성장했어요. 택시 합승제도는 1982년 교통부와 서울시가 택시 서비스 향상을 위해 전면 금지하기 전까지 지속됐습니다.
전시실 내에는 1961년 서울시 내무국 시민과에서 작성한 '시내버스 및 합승택시 노선(경유지) 일부 변경 공고'가 있어요. 동대문 오관수다리 복개도로 개통에 따라 시내버스와 합승택시의 노선이 변경되었다는 내용의 공고문인데요. 합승택시 역시 버스와 마찬가지로 노선과 경유지가 서울시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죠.
1992년 등장한 모범택시 운전기사 복장 규정 기록물. ⓒ서울기록원
"버스와 택시 등 지상의 교통수단만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자, 서울시는 교통 체계를 지상에서 지하로 확대했어요. 1974년 개통된 지하철 1호선은 입체도시 서울의 시작을 알렸죠."(최)
서울 시내 곳곳이 지하철과 버스로 연결되기 이전 서울 시민들이 많이 이용했던 교통수단은 노면전차였어요. 1899년 대한제국 시기에 등장한 노면전차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광복 이후에도 서울시가 전차 사업을 인수해 운영했어요. 1950년대 중후반까지 노면전차는 약 40km의 노선에서 190여 대의 전차로 하루 약 30만여 명을 수송하는 서울의 중요한 교통수단이었어요. 하지만 1960년대 버스와 택시의 시민 수송 비중이 높아지자 노면전차 운영은 만성 적자 상태에 빠졌고, 시설 노후화까지 겹쳐 애물단지로 전락했죠. 결국 노면전차는 70년간의 운행 끝에 1968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어느 도시의 탑승록'에서는 서울기록원이 소장한 120여 건의 기록물과 지하철 건설에 참여했던 설계자의 기증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노면전차가 사라진 후 서울시는 지하철 건설을 추진했습니다. 1971년 4월 기공한 지하철 1호선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해 서울역-종로-청량리를 잇는 구간이 개통했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지하철 건설공사는 대로변의 교통혼잡, 땅을 파내려 가는 굴착공사로 인한 소음 민원 및 주변 건물 피해, 정차장 부지 관련 보상, 문화재위원회와의 마찰 등 어려움의 연속이었어요.
전시실에서는 1970년대 지하철 1호선 건설 사업에 설계자로 참여한 김영수씨가 기증한 지하철 1호선 공사 현장 촬영 사진 앨범과 당시 작성한 업무 수첩을 만날 수 있어요. 건설 관계자로서 꾸준히 기록한 그의 자료에는 지하철 건설 과정과 현장의 분위기가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공사로 인한 교통혼잡과 소음에 시달리던 시민에게 '시민의 발입니다. 조금만 참아주십시오'라고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던 순간, 크리스마스 당시 공사를 쉬었는데 공사 구간 위로 버스 한 대가 진입해 사고가 났던 아찔한 기억 등이 김영수씨의 기록을 통해 나타나죠.
서울기록원 보존서비스과 이세진 과장은 "서울기록원은 서울시의 중요한 기록을 보존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공공기록물을 주로 보존하지만, 공공기록물로 다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시민의 기록에서 포착되는 경우도 있죠. 김영수씨의 수첩처럼요. 이렇게 서울시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공공성이 인정되면 시민의 기록도 수집하죠"라고 설명했어요.
길이가 18m에 이르는 지하철 1호선 평면도. 1970년대 서울이 그대로 담겨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길이가 18m에 이르는 지하철 1호선 평면도 역시 이번 전시에서 공개된 중요한 자료인데요. 이 평면도에는 지하철이 지나가는 구간의 지역 정보, 도로의 상태, 주변 환경까지 1970년대 서울이 그대로 담겨 있어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어요. "버스·택시 운영 확대와 지하철의 도입으로 서울은 하나의 생활권이 됐어요. 또한 서울의 중심지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곳이 생겼죠. 즉, 도심이 하나인 방사형 도시에서 다핵도시가 된 겁니다. 대중교통이 중요한 역할을 했죠."(최)
이렇게 노면전차의 퇴장과 시내버스 체계 변화, 택시 사업의 확장, 지하철의 등장 등 서울의 대중교통 변화 양상을 1960~1980년대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봤습니다. 이러한 변화 과정 속에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함께했어요. 전시실에는 지하철 역명 변경에 관한 청원, 교통난 완화 등 여러 시정 개선을 위해 1960년대 시청 안에 설치했던 '아이디어 뱅크' 관련 사진 등 시민이 새로운 교통수단 도입 및 발전에 참여한 기록들도 남아있죠. 전차가 오가던 거리, 버스와 자동차로 가득한 도심, 그 아래를 달리는 지하철까지. 지상과 지하로 '겹겹이 쌓인 도시' 서울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었네요.
■ 사진으로 보는 서울시 대중교통
「 1960년대는 서울시가 대중교통 관련 정책을 주도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시기예요. 또 1970년대에는 지하철이 등장했죠. 당시 서울시의 버스·택시·지하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사진으로 만나봅시다.
ⓒ서울기록원
1. 1967년 3월 중에 선보일 시영버스의 차체검사를 마친 모습. 민간버스 사업자가 메우기 힘든 교통 노선 공백을 메우고자 1967년 운행을 시작한 시영버스는 1974년 9월 민간에 매각되며 운행이 종료됐어요.
ⓒ서울기록원
2. 1963년 8월 촬영된 택시 안 미터기 부착 모습. 서울에 택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12년이지만, 택시미터기제는 1963년 도입됐어요. 미터기는 운행한 거리만큼 택시 요금을 책정해주는 기계죠. 초기에는 미터기 고장이나 미부착으로 인한 시민의 불편이 발생해 서울시가 단속에 나서기도 했어요.
ⓒ서울기록원
3. 지하철 1호선은 대중교통량이 가장 많고 서울 동서 기본 축을 이루는 서울역-종로-청량리를 잇는 구간에 1974년 개통했어요. 사진은 당시 개통을 앞둔 지하철 1호선 운행을 위해 1974년 3월 28일 부산항에 들어온 전동차.
」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서울기록원 기자 admin@no1reelsi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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