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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주가 술빚기 체험 참가자가 찹쌀, 누룩, 물을 이용해 전통 탁주를 빚고 있다. 왼쪽부터 불려 씻을 쌀을 체에 밭치는 모습, 고두밥을 식히는 모습, 고두밥과 누룩물을 섞는 모습.
탁주를 빚은 지 3주 후 술을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
골드몽
프랑스에 가면 넓은 포도밭에 둘러싸인 와인 양조장을, 일본에 가면 사케 양조장을 둘러봐야 한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소, 독일의 맥주 양조장도 반드시 둘러봐야 하는 필수 관광지다. 식음 문화의 정수인 술을 빚는 양조장은 현지의 향과 맛을 작은 잔 하나에 응축해놓은 여행의 정수다.
황금성슬롯 우리는 애석하게도 산업화 시대의 주류 규제를 거치며 전통주의 명맥이 끊겼다. ‘비법 장’을 담듯 집집마다 담근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을 만큼 한때 다양한 ‘로컬 양조장’이 있었지만, 현재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여행을 가서 오래된 지역 양조장의 ‘특산주’를 맛보더라도 공허한 감미료 맛이라 실망하는 일이 잦다.
오히 야마토게임장 려 상대적으로 ‘신생’인 양조장 중심으로 우리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쌀이 많이 나고 수요층이 몰린 수도권에 집중 분포돼 있다.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경기 일대의 우리술 양조장을 찾아 나섰다. 저마다 맛과 향은 달라도 감미료 없이 물, 쌀, 국(누룩)만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만을 선별했다.
시장과 상생하는 마을기업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성공사례 '오산양조'
경기 오산시 오산양조가 빚는 술 모음. 왼쪽부터 오산막걸리, 경기쌀막걸리 2병, 오산로하이 2병, 하얀까마귀, 독산30, 독산53, 율, 산수화.
사이다릴게임오산양조 외벽에 각종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오산양조는 마을기업 형태 양조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경기 오산시 오색전통시장 초입에 자리 잡은 오산양조는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을 자처한다. 매년 다섯 번씩 전통시장과 연계해 ‘오픈주막’ 행사를 주관한다. 전통시장에서 구매한 먹거리와 양조장의 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상생형 축제다. 전국 맥주가 오색시장 일대로 모이는 ‘야맥축제’ 등 지역 축제 기간에는 양조장 공간을 열어 공간을 내어주기도 한다. 지난해부터는 지역 농협과 함께 ‘오산 세마쌀로 빚은 수제 전통주 품평회’도 개최하고 있다.
오산양조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술’을 지향한다. 술빚기를 총괄하는 오서윤 양조기술이사는 “전통 방식을 지키되 현대 소비자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맛과 디자인을 고민한다”며 전통주가 “소비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그 때문인지 소규모 양조장치고 제품군도 다양한 편이다. 탁주 4종(오산막걸리, 경기쌀막걸리, 하얀까마귀, 산수화), 약주 1종 (율), 증류식 소주 4종(독산53, 독산30, 오산로하이20 스피릿, 오산로하이20 오크), 기타주류 1종(건강한요리술)을 빚고 있다. 전반적으로 톡톡 튀는 산미가 적고 부드러운 단맛과 은은한 고소함이 도는 술을 빚는다. 오산 세마쌀과 밀누룩, 물로 원주를 빚는다.
'독산' 등 증류주를 증류하기 위한 증류기.
양조장 외부 창을 통해 양조장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양조장을 대표하는 술은 ‘하얀까마귀’(8%)다. 오산의 시조(市鳥)인 까마귀가 ‘막걸리를 너무 많이 마시다 보니 하얗게 변했다’는 설정이 붙은 캐릭터 ‘까미’가 그려진 디자인이 눈에 띈다. 동글동글한 모양은 우리술의 주 원료인 쌀이 연상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덧술을 두 번 한 ‘삼양주’에 보통 막걸리보다 살짝 높은 도수임에도 믿을 수 없이 부드럽다. 고운 질감이 마치 가벼운 요구르트를 마시는 것만 같다. 균형 잡힌 단맛이 오산양조가 지향하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전통주’를 잘 나타낸다.
지난해에는 약주 ‘율’(13%)을 선보였다. 임진왜란 당시 오산 독산성에서 포위당한 권율 장군이 쌀을 뿌려 성 내부의 건재함을 과시해 왜적을 물렸다는 일화에서 이름을 따왔다. 술을 힘으로 짜지 않고 느리게 걸러 4개월 저온 숙성한다. 끈적이는 질감 없이 맑게 넘어가는 목넘김이 일품이다. 과하지 않은 단맛 뒤에 쌀의 고소함이 기분 좋게 올라온다.
오산양조 건물 밖에 설치된 입간판에 '전통주 무료시음'이 적혀 있다.
오산양조와 하얀까마귀 막걸리의 마스코트 '까미' 굿즈가 양조장에 진열돼 있다.
오산양조는 언제나 열려 있다. 전에는 일요일이 휴무였지만 발걸음을 돌리는 방문객들이 눈에 밟혀 연중무휴로 운영 방침을 바꿨다고. 양조장을 찾는 모든 이에게 무료 시음을 제공한다. 직원의 설명을 안주 삼아 요리술을 제외한 8종의 술을 맛볼 수 있다. 한 잔 한 잔 음미하며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이 양조장을 직접 찾는 재미다. 가장 입에 맞았던 술을 골라 ‘앵콜주’를 요청할 수도 있다. 시음공간에서 술은 물론 까미 인형 등 굿즈를 둘러볼 수도 있다. 벽면에 난 유리창을 통해 양조시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있다.
2022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에도 선정됐다. 전국 전통주 양조장 중 직접 찾아가기 좋은 곳을 선정해 방문·체험예약 등을 돕는 플랫폼이다. ‘편안한 양조장’ 콘셉트가 제대로 통했는지 첫해 1만2,260명이었던 방문객 수가 지난해에는 4만7,577명으로 4배 가깝게 늘었다.
'가양주작', 마을주민 동아리가 어엿한 양조장으로
경기 군포시 가양주작 내부 창고에 약주 '수암주'가 진열돼 있다.
과거 숙성실로 쓰였던 황토방은 현재 창고로 사용된다.
경기 군포시에도 마을 양조장이 있다. 수도권 전철 4호선 대야미역 앞에 있는 ‘가양주작’이다. 본래 함께 가양주를 담가온 마을 동호회가 ‘마을 주점’을 세우기 위해 법인화했다. 설립 연도는 2016년이지만 그 전부터 수년간 마을 주민 10명이 직접 막걸리와 약주를 담그고 서로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애써 숙성실에 바른 황토가 기밀성이 떨어져 못 쓰게 되는 등 초기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황토방은 지금도 창고로 쓰이고 있어 당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제대로 된 판매용 술은 2019년이 돼서야 완성됐다고 한다.
가양주작은 ‘달지 않고, 우리 음식과 어울리는 술’을 지향한다. 김은성 가양주작 대표는 “후미(끝맛)가 깔끔하게 떨어져야 음식과 함께 곁들이기에 부담 없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후미가 오래가면 술이 음식의 맛을 덮어버린다”며 “첫 맛은 부드러우면서 이후 알코올이 느껴지고, 마지막에 물처럼 딱 끓어지는 술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현재 가양주작의 술은 6~7브릭스(brix) 정도의 당도를 보인다.
가양주작에서 빚는 술. 왼쪽부터 수을43, 수암주, 수리산막걸리. 양조장의 테이블에서 자유롭게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가양주작 내부의 양조시설.
가양주작의 제품군은 단순하다. 탁주 1종(수리산막걸리), 약주 1종(수암주), 증류주 1종(수을43)을 빚는다.
수리산막걸리(10%)는 보기 드문 ‘드라이’한 전통 막걸리다.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의 주 고객층이 단맛을 선호하는 40대 이하 젊은 층임을 고려하면 험난한 도전이다. 그러나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셔 보면 왜 굳이 험한 길을 택했는지 대번에 알게 된다. 달지 않아도 결코 밋밋하지 않다. 맛은 드라이하지만 향은 화사하다. 드라이한 술은 무미(無味)하거나 심하면 쓰다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수리산막걸리는 그렇지 않다. 기자도 과거 경험에 비추어 드라이한 막걸리는 취향이 아닐 것이라 지레짐작했지만 첫 잔에 생각이 바뀌었다. 잘 양조된 쌀의 꽃향과 과실향이 풍부하다. 단맛에 혀가 피로해지지 않아 계속 잔이 비워진다.
수암주(14%)는 지금의 가양주작을 있게 한 술이다. 마찬가지로 ‘달지 않은 맛, 화사한 향’이 특징이다. 적절한 산미가 술의 과일 향을 도드라지게 한다. 마치 매실을 입에 머금은 것도 같다. 혀에 닿았을 때 존재감이 결코 작지 않지만, 김 대표의 설명처럼 목을 지나는 순간 금세 끝맛이 사라진다. 가양주작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지만 김 대표는 “원하는 술의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아직 85에서 90 정도밖에 못 왔다”며 “더 깔끔하고 드라이한 술을 만드는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에는 양조장에서 간단한 음식도 판매했지만 현재는 오로지 술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양조장 내에 준비된 식탁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가져와 반주를 즐길 수 있다. 양조장 내부에 위치한 키오스크를 통해 24시간 무인 이용할 수 있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전직 생물학자의 양조 연구실 '행주산성주가'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주가에서 빚는 술. 왼쪽부터 한 70, 행주나루, 냥이탁주, 행주산성막걸리.
행주산성주가 체험·교육실 벽면에 수많은 전통주 병이 진열돼 있다.
서울을 지나 경기 고양시로 넘어가면 평범한 오피스텔 건물에 행주산성주가가 숨어 있다. 이광희 대표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술을 빚는 인생 2막을 택했다. 이 대표 집안에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직접 빚던 가양주가 대대로 내려왔지만 자식들이 상경하며 맥이 끊겼다. 이후 제사주로 시판 정종을 올리자 늘 비워졌던 술이 남았다고 회상했다. “술이 맛이 없으니 음복을 형식적으로 하게 됐다”는 이 대표는 “우리가 맛없다고 느낀 술을 할아버지, 아버지께 대접하는 게 스스로 용서가 안 됐다”고 술빚기를 배우기로 결심한 계기를 설명했다.
도제식 교육으로 이뤄지는 전통 양조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해 해외 논문을 찾아가며 ‘과학적 양조’를 공부했다. 우리술에 직접 대입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 미생물학 지식을 기반으로 우리 환경에 대입해 결과를 추론했다.
행주산성주가는 2인 이상부터 술빚기 체험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양조장은 많게는 8인 이상, 적게는 4인 이상부터 체험 신청이 가능해 개인 여행객은 신청하기 어렵다. 1인당 찹쌀 1㎏씩을 미리 불려놔야 해 사전 예약은 필수다. 불린 쌀을 헹구고 다시 물을 빼고, 고두밥을 지어 식힌 후 누룩물과 잘 섞어 발효 용기에 병입하는 과정까지 진행한다. 이후 집에서 마저 발효시켜 3주 후에 첫 술을 맛볼 수 있다. 물을 빼고 밥을 지으며 기다리는 동안 행주산성주가의 술을 마음껏 시음하며 생생한 양조 강의도 듣는다. 현상 기저의 이론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강의에서 전직 학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행주산성주가 내부의 양조시설.
행주산성주가에서 빚은 원주가 발효과정을 거치고 있다.
행주산성주가의 간판 막걸리는 '냥이탁주'다. 보리, 수수, 꿀, 오미자 등을 첨가한 '냥이탁주 프레시'(5%), '냥이탁주 9'(9%)와 오직 물, 쌀, 누룩으로 빚은 '냥이탁주 화이트'(10.5%)가 있다. 전반적으로 '새콤달콤하게 직관적으로 맛있는 술'을 지향한다. 단맛과 산미가 선명해 젊은 여성 층에 특히 인기가 높다. 고양시의 전 마스코트 동물인 고양이를 주제로 한 브랜딩·디자인은 미술을 전공한 딸이 도입했다고 한다. 술빚기 체험은 찹쌀로 진행되지만 냥이탁주는 고양 가와지쌀로 빚는다.
가장 상큼하고 가벼워 보이는 탁주를 빚는 양조장에서 가장 묵직한 술도 빚는다. 지난해 말 무려 70도에 달하는 증류식 소주 '한 70'을 선보였다. 동증류기로 단식증류해 옹기에 1년 숙성시켜 빚는다. 희석식은 물론 증류식 소주조차 입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온 기자의 혀를 틔게 한 술이다. 높은 도수가 무색하게 소주 특유의 역한 알코올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맛과 향이 겉돌지 않고 조화롭게 입 안에 퍼진다. 그간 마셔온 소주가 물과 알코올이 서로 분리되려 몸부림치는 느낌이었다면 '한'은 안정적이다. '잘 만든 곡주'의 정수를 맛본 기분이다.
다양한 전통주가 한자리에 모인 '전통주 갤러리'
서울 종로구 전통주 갤러리 시음회 참석자가 술을 따르는 진행자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전통주 갤러리에 시음주가 진열돼 있다. 탁주, 약주, 과실주, 증류주 등 각 분야별 술을 매월 다양하게 선정한다.
멀리 가기 어려운 서울 주민이라면 여러 전통주를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서울 종로구 ‘전통주 갤러리’를 찾아봄직하다. 양조장은 아니지만 전국팔도의 다양한 술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다.
매 시간마다 진행하는 무료시음이 특히 인기다. 매월 새로 선정되는 '이달의 전통주' 5종을 전문가의 해설을 들어며 시음한다. 작성한 시음노트는 피드백으로 양조장에 전달돼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윈윈'이다.
매월 말 다음 달 시음회 예약이 열리는데, 주말 일정은 대부분 열리자마자 매진된다. 한 회차당 10명이 참가할 수 있다. 이 중 두 자리는 온라인 예약에 실패한 이들을 위해 현장 방문객 전용으로 운영한다. 특히 오후 3시와 4시에는 외국인 방문객을 위해 영어로 프로그램이 진행돼 방한 관광객에게 우리술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일상이 된 여행. 이한호 한국일보 여행 담당 기자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요즘 여행을 소개합니다.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주가 술빚기 체험 참가자가 찹쌀, 누룩, 물을 이용해 전통 탁주를 빚고 있다. 왼쪽부터 불려 씻을 쌀을 체에 밭치는 모습, 고두밥을 식히는 모습, 고두밥과 누룩물을 섞는 모습.
탁주를 빚은 지 3주 후 술을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
골드몽
프랑스에 가면 넓은 포도밭에 둘러싸인 와인 양조장을, 일본에 가면 사케 양조장을 둘러봐야 한다.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증류소, 독일의 맥주 양조장도 반드시 둘러봐야 하는 필수 관광지다. 식음 문화의 정수인 술을 빚는 양조장은 현지의 향과 맛을 작은 잔 하나에 응축해놓은 여행의 정수다.
황금성슬롯 우리는 애석하게도 산업화 시대의 주류 규제를 거치며 전통주의 명맥이 끊겼다. ‘비법 장’을 담듯 집집마다 담근 ‘가양주(家釀酒)’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을 만큼 한때 다양한 ‘로컬 양조장’이 있었지만, 현재는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여행을 가서 오래된 지역 양조장의 ‘특산주’를 맛보더라도 공허한 감미료 맛이라 실망하는 일이 잦다.
오히 야마토게임장 려 상대적으로 ‘신생’인 양조장 중심으로 우리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쌀이 많이 나고 수요층이 몰린 수도권에 집중 분포돼 있다. 부담 없이 방문할 수 있는 경기 일대의 우리술 양조장을 찾아 나섰다. 저마다 맛과 향은 달라도 감미료 없이 물, 쌀, 국(누룩)만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만을 선별했다.
시장과 상생하는 마을기업 바다이야기게임사이트 성공사례 '오산양조'
경기 오산시 오산양조가 빚는 술 모음. 왼쪽부터 오산막걸리, 경기쌀막걸리 2병, 오산로하이 2병, 하얀까마귀, 독산30, 독산53, 율, 산수화.
사이다릴게임오산양조 외벽에 각종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이 부착돼 있다.
오산양조는 마을기업 형태 양조장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경기 오산시 오색전통시장 초입에 자리 잡은 오산양조는 지역공동체의 구심점을 자처한다. 매년 다섯 번씩 전통시장과 연계해 ‘오픈주막’ 행사를 주관한다. 전통시장에서 구매한 먹거리와 양조장의 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상생형 축제다. 전국 맥주가 오색시장 일대로 모이는 ‘야맥축제’ 등 지역 축제 기간에는 양조장 공간을 열어 공간을 내어주기도 한다. 지난해부터는 지역 농협과 함께 ‘오산 세마쌀로 빚은 수제 전통주 품평회’도 개최하고 있다.
오산양조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술’을 지향한다. 술빚기를 총괄하는 오서윤 양조기술이사는 “전통 방식을 지키되 현대 소비자들이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맛과 디자인을 고민한다”며 전통주가 “소비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그 때문인지 소규모 양조장치고 제품군도 다양한 편이다. 탁주 4종(오산막걸리, 경기쌀막걸리, 하얀까마귀, 산수화), 약주 1종 (율), 증류식 소주 4종(독산53, 독산30, 오산로하이20 스피릿, 오산로하이20 오크), 기타주류 1종(건강한요리술)을 빚고 있다. 전반적으로 톡톡 튀는 산미가 적고 부드러운 단맛과 은은한 고소함이 도는 술을 빚는다. 오산 세마쌀과 밀누룩, 물로 원주를 빚는다.
'독산' 등 증류주를 증류하기 위한 증류기.
양조장 외부 창을 통해 양조장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양조장을 대표하는 술은 ‘하얀까마귀’(8%)다. 오산의 시조(市鳥)인 까마귀가 ‘막걸리를 너무 많이 마시다 보니 하얗게 변했다’는 설정이 붙은 캐릭터 ‘까미’가 그려진 디자인이 눈에 띈다. 동글동글한 모양은 우리술의 주 원료인 쌀이 연상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덧술을 두 번 한 ‘삼양주’에 보통 막걸리보다 살짝 높은 도수임에도 믿을 수 없이 부드럽다. 고운 질감이 마치 가벼운 요구르트를 마시는 것만 같다. 균형 잡힌 단맛이 오산양조가 지향하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전통주’를 잘 나타낸다.
지난해에는 약주 ‘율’(13%)을 선보였다. 임진왜란 당시 오산 독산성에서 포위당한 권율 장군이 쌀을 뿌려 성 내부의 건재함을 과시해 왜적을 물렸다는 일화에서 이름을 따왔다. 술을 힘으로 짜지 않고 느리게 걸러 4개월 저온 숙성한다. 끈적이는 질감 없이 맑게 넘어가는 목넘김이 일품이다. 과하지 않은 단맛 뒤에 쌀의 고소함이 기분 좋게 올라온다.
오산양조 건물 밖에 설치된 입간판에 '전통주 무료시음'이 적혀 있다.
오산양조와 하얀까마귀 막걸리의 마스코트 '까미' 굿즈가 양조장에 진열돼 있다.
오산양조는 언제나 열려 있다. 전에는 일요일이 휴무였지만 발걸음을 돌리는 방문객들이 눈에 밟혀 연중무휴로 운영 방침을 바꿨다고. 양조장을 찾는 모든 이에게 무료 시음을 제공한다. 직원의 설명을 안주 삼아 요리술을 제외한 8종의 술을 맛볼 수 있다. 한 잔 한 잔 음미하며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이 양조장을 직접 찾는 재미다. 가장 입에 맞았던 술을 골라 ‘앵콜주’를 요청할 수도 있다. 시음공간에서 술은 물론 까미 인형 등 굿즈를 둘러볼 수도 있다. 벽면에 난 유리창을 통해 양조시설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있다.
2022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하는 ‘찾아가는 양조장’에도 선정됐다. 전국 전통주 양조장 중 직접 찾아가기 좋은 곳을 선정해 방문·체험예약 등을 돕는 플랫폼이다. ‘편안한 양조장’ 콘셉트가 제대로 통했는지 첫해 1만2,260명이었던 방문객 수가 지난해에는 4만7,577명으로 4배 가깝게 늘었다.
'가양주작', 마을주민 동아리가 어엿한 양조장으로
경기 군포시 가양주작 내부 창고에 약주 '수암주'가 진열돼 있다.
과거 숙성실로 쓰였던 황토방은 현재 창고로 사용된다.
경기 군포시에도 마을 양조장이 있다. 수도권 전철 4호선 대야미역 앞에 있는 ‘가양주작’이다. 본래 함께 가양주를 담가온 마을 동호회가 ‘마을 주점’을 세우기 위해 법인화했다. 설립 연도는 2016년이지만 그 전부터 수년간 마을 주민 10명이 직접 막걸리와 약주를 담그고 서로 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애써 숙성실에 바른 황토가 기밀성이 떨어져 못 쓰게 되는 등 초기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황토방은 지금도 창고로 쓰이고 있어 당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우여곡절 끝에 제대로 된 판매용 술은 2019년이 돼서야 완성됐다고 한다.
가양주작은 ‘달지 않고, 우리 음식과 어울리는 술’을 지향한다. 김은성 가양주작 대표는 “후미(끝맛)가 깔끔하게 떨어져야 음식과 함께 곁들이기에 부담 없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후미가 오래가면 술이 음식의 맛을 덮어버린다”며 “첫 맛은 부드러우면서 이후 알코올이 느껴지고, 마지막에 물처럼 딱 끓어지는 술을 지향한다”고 말했다. 현재 가양주작의 술은 6~7브릭스(brix) 정도의 당도를 보인다.
가양주작에서 빚는 술. 왼쪽부터 수을43, 수암주, 수리산막걸리. 양조장의 테이블에서 자유롭게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가양주작 내부의 양조시설.
가양주작의 제품군은 단순하다. 탁주 1종(수리산막걸리), 약주 1종(수암주), 증류주 1종(수을43)을 빚는다.
수리산막걸리(10%)는 보기 드문 ‘드라이’한 전통 막걸리다.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의 주 고객층이 단맛을 선호하는 40대 이하 젊은 층임을 고려하면 험난한 도전이다. 그러나 막걸리를 한 모금 마셔 보면 왜 굳이 험한 길을 택했는지 대번에 알게 된다. 달지 않아도 결코 밋밋하지 않다. 맛은 드라이하지만 향은 화사하다. 드라이한 술은 무미(無味)하거나 심하면 쓰다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수리산막걸리는 그렇지 않다. 기자도 과거 경험에 비추어 드라이한 막걸리는 취향이 아닐 것이라 지레짐작했지만 첫 잔에 생각이 바뀌었다. 잘 양조된 쌀의 꽃향과 과실향이 풍부하다. 단맛에 혀가 피로해지지 않아 계속 잔이 비워진다.
수암주(14%)는 지금의 가양주작을 있게 한 술이다. 마찬가지로 ‘달지 않은 맛, 화사한 향’이 특징이다. 적절한 산미가 술의 과일 향을 도드라지게 한다. 마치 매실을 입에 머금은 것도 같다. 혀에 닿았을 때 존재감이 결코 작지 않지만, 김 대표의 설명처럼 목을 지나는 순간 금세 끝맛이 사라진다. 가양주작의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지만 김 대표는 “원하는 술의 수준을 100으로 봤을 때 아직 85에서 90 정도밖에 못 왔다”며 “더 깔끔하고 드라이한 술을 만드는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에는 양조장에서 간단한 음식도 판매했지만 현재는 오로지 술만 구매할 수 있다. 그러나 양조장 내에 준비된 식탁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가져와 반주를 즐길 수 있다. 양조장 내부에 위치한 키오스크를 통해 24시간 무인 이용할 수 있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전직 생물학자의 양조 연구실 '행주산성주가'
경기 고양시 행주산성주가에서 빚는 술. 왼쪽부터 한 70, 행주나루, 냥이탁주, 행주산성막걸리.
행주산성주가 체험·교육실 벽면에 수많은 전통주 병이 진열돼 있다.
서울을 지나 경기 고양시로 넘어가면 평범한 오피스텔 건물에 행주산성주가가 숨어 있다. 이광희 대표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다 술을 빚는 인생 2막을 택했다. 이 대표 집안에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직접 빚던 가양주가 대대로 내려왔지만 자식들이 상경하며 맥이 끊겼다. 이후 제사주로 시판 정종을 올리자 늘 비워졌던 술이 남았다고 회상했다. “술이 맛이 없으니 음복을 형식적으로 하게 됐다”는 이 대표는 “우리가 맛없다고 느낀 술을 할아버지, 아버지께 대접하는 게 스스로 용서가 안 됐다”고 술빚기를 배우기로 결심한 계기를 설명했다.
도제식 교육으로 이뤄지는 전통 양조의 한계를 보충하기 위해 해외 논문을 찾아가며 ‘과학적 양조’를 공부했다. 우리술에 직접 대입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라 미생물학 지식을 기반으로 우리 환경에 대입해 결과를 추론했다.
행주산성주가는 2인 이상부터 술빚기 체험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양조장은 많게는 8인 이상, 적게는 4인 이상부터 체험 신청이 가능해 개인 여행객은 신청하기 어렵다. 1인당 찹쌀 1㎏씩을 미리 불려놔야 해 사전 예약은 필수다. 불린 쌀을 헹구고 다시 물을 빼고, 고두밥을 지어 식힌 후 누룩물과 잘 섞어 발효 용기에 병입하는 과정까지 진행한다. 이후 집에서 마저 발효시켜 3주 후에 첫 술을 맛볼 수 있다. 물을 빼고 밥을 지으며 기다리는 동안 행주산성주가의 술을 마음껏 시음하며 생생한 양조 강의도 듣는다. 현상 기저의 이론 하나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강의에서 전직 학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행주산성주가 내부의 양조시설.
행주산성주가에서 빚은 원주가 발효과정을 거치고 있다.
행주산성주가의 간판 막걸리는 '냥이탁주'다. 보리, 수수, 꿀, 오미자 등을 첨가한 '냥이탁주 프레시'(5%), '냥이탁주 9'(9%)와 오직 물, 쌀, 누룩으로 빚은 '냥이탁주 화이트'(10.5%)가 있다. 전반적으로 '새콤달콤하게 직관적으로 맛있는 술'을 지향한다. 단맛과 산미가 선명해 젊은 여성 층에 특히 인기가 높다. 고양시의 전 마스코트 동물인 고양이를 주제로 한 브랜딩·디자인은 미술을 전공한 딸이 도입했다고 한다. 술빚기 체험은 찹쌀로 진행되지만 냥이탁주는 고양 가와지쌀로 빚는다.
가장 상큼하고 가벼워 보이는 탁주를 빚는 양조장에서 가장 묵직한 술도 빚는다. 지난해 말 무려 70도에 달하는 증류식 소주 '한 70'을 선보였다. 동증류기로 단식증류해 옹기에 1년 숙성시켜 빚는다. 희석식은 물론 증류식 소주조차 입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 온 기자의 혀를 틔게 한 술이다. 높은 도수가 무색하게 소주 특유의 역한 알코올향이 느껴지지 않는다. 맛과 향이 겉돌지 않고 조화롭게 입 안에 퍼진다. 그간 마셔온 소주가 물과 알코올이 서로 분리되려 몸부림치는 느낌이었다면 '한'은 안정적이다. '잘 만든 곡주'의 정수를 맛본 기분이다.
다양한 전통주가 한자리에 모인 '전통주 갤러리'
서울 종로구 전통주 갤러리 시음회 참석자가 술을 따르는 진행자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전통주 갤러리에 시음주가 진열돼 있다. 탁주, 약주, 과실주, 증류주 등 각 분야별 술을 매월 다양하게 선정한다.
멀리 가기 어려운 서울 주민이라면 여러 전통주를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서울 종로구 ‘전통주 갤러리’를 찾아봄직하다. 양조장은 아니지만 전국팔도의 다양한 술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다.
매 시간마다 진행하는 무료시음이 특히 인기다. 매월 새로 선정되는 '이달의 전통주' 5종을 전문가의 해설을 들어며 시음한다. 작성한 시음노트는 피드백으로 양조장에 전달돼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 '윈윈'이다.
매월 말 다음 달 시음회 예약이 열리는데, 주말 일정은 대부분 열리자마자 매진된다. 한 회차당 10명이 참가할 수 있다. 이 중 두 자리는 온라인 예약에 실패한 이들을 위해 현장 방문객 전용으로 운영한다. 특히 오후 3시와 4시에는 외국인 방문객을 위해 영어로 프로그램이 진행돼 방한 관광객에게 우리술을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글·사진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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